홍대 인근 5층, 탁 트인 환한 공간을 아기자기하고 깔끔하게 자신만의 색깔로 꾸며낸 작업 공간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잠산 선생님을 만났다. 처음에 거칠고 터프한 이미지와는 달리 첫 만남에서부터 친근하고 적대감 없는 대화에 거장이라는 무게보다는 친숙한 사람냄새를 풍겨내고 있었다.

이소라의 프로포즈 ‘그 남자 그 여자’ 코너를 장식한 그림, 화제작 박지성 주인공의 ‘Be the legend’ 그래픽 노블, 2007 앙드레김 베스트스타 어워드 무대 디자인 일러스트, 예술의 전당 마술피리 오페라공연 일러스트 등 수 많은 대작들로 기억이 되는 그의 존재감은 일러스트를 시작하고 배우는 친구들에게 실로 클 것이다.

최근에 이사해서 정리한지 몇 일 안됐다며 작업실에 안내하는 그는 손수 커피한잔을 건네며 어색하지 않은 대화를 이끌어 냈다.

1. 선생님 안녕하세요. 일러스트계에서 선생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던데, 컨셉디자이너로 선생님을 소개하는 곳도 있더라고요. 하시는 일은 컴퓨터로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인걸로 아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우리나라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하면 동화 그리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많이 있고 컨셉디자이너라고 하면 게임 분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많은데 사실 다 일러스트 범주에 속하거든요. 굳이 범주를 나누어서 생각하자고 한다면 그림이 필요한 분야에서 컨셉을 잡고 창의적인 작업물을 돌출해 나가는 것 차체가 컨셉아트, 컨셉디자인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저를 소개해달라고 말씀 드리곤 해요^^. 

2. 작업하실 때 주로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시나요? 그리고 컴퓨터 작업의 장단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페인터로만 작업을 합니다. 그림을 의뢰 받아서 하는 작업들은 클라이언트와 작가가 호흡을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고, 의견을 보완하면서 완성해가는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프로젝트 개념이라서 나 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컴퓨터는 최적의 툴이라고 생각해요. 수정 보완이 언제나 가능하고, 요즘엔 프로그램이 좋아지다 보니 회화적인 느낌도 충분히 살릴 수 있어서 좋은 표현 도구라고 생각해요.

특히 선생님은 스케치 없이 바로 작업을 진행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가능한지 그게 바로 컴퓨터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머릿속에 있는 것을 바로 옮기고 잘 안되면 수정하고 지우고 일명 “언두(컴퓨터단축키언어)”가 가능하잖아요. 그렇게 몇 년을 작업하다 보니 스케치 없이 작업이 되더라고요.

3. 수작업이 익숙하신 분들은 컴퓨터 작업이 더 많은 작업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던데, 실제로 어떤가요?

사실 컴퓨터작업이 작업시간이 적게 걸리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작품스타일이 작업시간과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작품스타일이 세밀하게 묘사하는 그림이라면 컴퓨터 그림이던 수작업이던 작업시간은 많이 소요되거든요. 또한 작업시간이 적게 소요되는 간단한 그림이라고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나오기까지 작가는 많은 생각과 완성도를 높이는 작품의 요소들을 함축하는 훈련으로 그런 내공이 높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작업하는 도구로써 컴퓨터가 사용되는 것이고 작업시간은 작가의 스타일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요.

4. 선생님의 작품은 SF공상영화를 보는듯한 판타지적 느낌이 많이 듭니다.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으세요?

영감이라고 따로 무엇을 본다거나 하는 것은 사실 없어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제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저는 다른 뛰어난 분들에 비하면 드로잉 스킬이 부족했어요. 게다가 똑같이 출발해도 부족할 판에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나만의 발상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했죠.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나를 찾는 것에서부터 고민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아이디어적인 발상을 계속 훈련하다 보니 그런 작업들이 돌출되더라고요. 그런 과정에서 계속 그리기를 반복하니까 어느 시점에서 드로잉 스킬도 자동적으로 따라오더라고요. 계속해서 생각하고 그리는 것을 반복하는 행위가 영감이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5. 컴퓨터 작업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떤 분은 수작업의 정교함을 못따라 간다는 의견과 함께 컴퓨터 작업의 특성인 재 작업의 용이성 때문에 간단한 대량작업용에 컴퓨터 작업이 더욱 많아 질것이라는 의견도 있던데.

사실 컴퓨터 그림은 대세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수요가 많아지겠죠. 그렇다면 수작업은 더욱 수작업의 강점, 컴퓨터 그림으로 표현이 안 되는 부분에서 수작업의 강점을 살려가야겠지요. 미술계는 행위예술, 드로잉 퍼포먼스 분야가 앞으로 더욱 커질 거라고 봅니다. 일반 그림은 컴퓨터 작업으로 채워지겠지요. 그렇게 되면 점점 더 컴퓨터는 표현 도구 일 뿐이고 스킬 또한 기본옵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시점이 되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새로운 발상의 그림이 가치가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6.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많고 고독한 경우가 있는데, 작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세요?

개인작업 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면 다들 놀라시는 것 같은데, 의뢰 받은 일을 하다 보면 일이기 때문에 하기 싫을 때도 있고, 마감시간을 맞춰야 하니까 스트레스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개인작업을 하다 보면 새로운 발상이나 시도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렇게 나오는 작업들이 또 다른 포트폴리오가 되고 기존의 작업 방식하고 다른 작업이 도출되니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되죠.

7. 프리랜서의 장점은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에 있는데 반면에 시간관리라든지 고정수입이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간혹 그림 그리는 분들이 투잡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같은 분야의 투잡이라면 좋은 것 같아요. 새로운 경험으로 나오는 것들을 자신의 작업에 적용시키고 실험적인 시도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을 테니까요.

8. 우리나라 일러스트가 발전하기 위해서 어떤 점이 개선사항이라고 생각하세요?

교육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창의적인 교육이 아니라 주입식 교육이다 보니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자신의 느낌을 그림으로 도출해내는 방법을 모릅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서 기법이나 스킬은 두 번째 문제거든요. 학교 때 배운 스킬이나 기법을 사회에 나와 작업활동 하면서 완벽하게 버리고 다시 새롭게 발상하고 표현해내는 것을 연구하는 것으로 재 출발한 친구들이 성공한 친구가 많아요. 생각을 많이 하고 생각한 것을 옮기는 연습과 훈련을 많이 하다 보면 기존에 배웠던 스킬들이 저절로 좋은 표현도구가 되는 거죠. 그런 과정에서 좋은 작품을 많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9. 앞으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꼭 이 얘기를 해줘야겠다는 것이 있을까요?

후배들이 ‘어떻게 하면 상업적인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상업적이 그림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고 봅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당사자 모두 사람이고 사람에게 공감이 가는 그림을 그린다면 대중이 선호하는 그림인 것이고 그런 그림이 상업적인 그림이
되더라는 거죠. 뛰어난 예술가는 대중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공감을 얻어낸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볼 때 그 핵심은 희로애락에 있다고 봅니다.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감성의 한 자락을 강하게 어필해 냈을 때 공감대가 생기는 것이지요. 기쁨이면 기쁨, 슬픔이면 슬픔, 어느 한가지에 대한 어필을 잘 끌어낸 그림은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기 때문에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자아를 찾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희로애락이 대중의 희로애락이 될 수 있는 거니까요. 나를 찾고 나를 표현해 내는 많은 훈련이 대중에게 공감대가 가는 작품이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10. 마지막으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려고 유학을 떠나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 부탁 드립니다.

다양한 것을 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훈련을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 이외의 공간에서 느낀 것들, 그 소중한 시간들을 나만의 감성으로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유학의 시간이 더욱 가치 있을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바쁘신 와중에도 플레이그라운드 인터뷰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좋은 작품 부탁 드립니다.

최근 경력

2005 잠산 아트상품 상품출시
2006 KBS2 ID CF 아트디렉터
2006 예술의전당 오페라 공연미술 외주 아트디렉터
2007 예술의전당 오페라"마술피리" 아트디렉터
2008 예술의전당 2008공연프로그램 아트디렉터
2008 앙드레 김 베스트스타 어워드 무대디자인
2008 나이키 박지성 cf & 그래픽노블 아트디렉터
2009 신세계백화점 크리스마스(크리스마스 인 오즈) 아트디렉터
2010 엔프라니 로드샵(홀리카홀리카) 아트디렉터
2011 삼성갤럭시2 노트 월드투어 시연회 초청작가

강의 특강

홍익대학교 컨셉디자인 강의
성공회대 컨셉디자인 강의
성신여자대학교 일러스트 특강
조선대학교 잠산일러스트 특강
동의대학교 잠산아티스트 특강
경기대학교 잠산 일러스트 특강
한겨레문화센터 잠산 그래픽 특강
공주대학교 일러스트 특강
청강대학교 아트일러스트 특강

[기사제공=더플레이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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