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N뉴스 임귀연 객원기자] 1984년. 당시 무명 감독에 불과하던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영화 ‘터미네이터’가 개봉했다. 미래에서 온 암살 로봇이 한 여자를 끈질기게 추격하는 감독 본인이 꿨던 꿈의 한 장면에서부터 시작되어 온 열정을 쏟아 완성될 수 있었던 이 프로젝트는 비록 저예산이었음에도 불과하고, 주연이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액션배우로 자리매김시켰을 뿐만 아니라 영화사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되고 만다. 

그 뒤에 만들어진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은 전편보다 나은 속편 없다는 속설을 뒤엎듯 화려한 특수효과와 탄탄한 완성도, 영화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대사와 명장면으로 전 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어마어마한 흥행 성적을 거둔다. 

그러나 화려했던 전설은 딱 거기까지였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하차한 뒤 만들어진 두 편의 속편은 이렇다 할 내용이나 새로움 면에서 관객들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고 관객들의 기억에서 점차 잊혀지며 ‘터미네이터’시리즈 역시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오랜 침묵을 깨고 새롭게 돌아 온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개봉 전부터 한국 팬들의 많은 화제를 모았다. T-1000으로 분한 국내 배우 이병헌의 출연, 아놀드 슈왈제네거, 에밀리아 클라크 등 주연배우들의 방한 역시 많은 이슈가 되었다. 시사회 이후로도 관객과 평단의 호평 속에서 개봉 첫 주, 거의 50퍼센트에 육박하는 엄청난 예매율을 자랑하며 주말극장가를 점령하였으며, 이 열기는 당분간 식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시리즈의 원점에서 시작해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향해 가는 영화다. 1편의 배경이 되는 사건인 ‘터미네이터’와 ‘사라 코너’의 수호자 ‘카일 리스’가 타임머신을 통해 1984년 과거로 보내지는 2029년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의 전반부는 특히나 1편과 2편의 명장면들을 그대로 쓰거나 변형한 장면들로 인해 흡사 리메이크를 보는 듯한 착각과 기시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제임스 카메론이 이룩한 성과인 1편과 2편에 대한 오마주에 머물지 않고, 복잡한 시간 개념을 차용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세계관 속에서 새로운 변증법적 진보를 이뤄낸다.

‘카일 리스’가 도착한 1984년은 우리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 숨어 있는데, 과거를 바꿔 새로운 미래를 가져온다는 기본 설정처럼 뒤바뀐 미래로 인해 과거도 새롭게 바뀌어 있던 것.

2편에서 어린 존 코너와 사라 코너를 보호하기 위해 과거로 보내졌던 T-800이 시간의 균열로 인해 또 다른 과거인 사라 코너의 어린 시절로 보내져 10년간 사라 코너의 보호자로서 다가올 위협과 심판의 날을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발한 상상력과 함께 영화 곳곳에 존재하는 역발상들이 더는 새로울 게 없을 것만 같던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완전히 새롭고 역동적으로 재창조해낸다. 진화한 아군들만큼이나 적들 역시 진화하는데, ‘제니시스’라는 이름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스카이넷’이 시리즈 내내 인류의 구세주이자 희망이던 ‘존 코너’를 무적의 터미네이터로 만들어 미래에서 과거로 보낸다는 설정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참 흥미롭다. 

흡사 영화 ‘나비효과’를 보듯 복잡하게 얽혀진 시간 개념은 1,2편의 튼튼한 바탕 위에서 시리즈를 총망라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관계 속에서 ‘터미네이터’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단선적이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냈다. 또한 동시대성을 견지하기 위해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이자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까지 잘 담아낸 점 역시 칭찬할 만 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제임스 카메론 감독 역시 “내가 만든 1,2편을 존중해주었다. 3편이라 부를 만하다.” 라고 하며, 새로운 시리즈의 부활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또한 이 영화를 한층 더 빛나게 해주는 데는 살아 숨쉬듯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배우들의 호연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중심에서 노병은 죽지 않음을 몸소 보여주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빛나는 존재감은 그가 없는 ‘터미네이터’시리즈를 상상한다는 게 얼마나 불가능하고 어리석은지 깨닫게 만든다. 

‘터미네이터’의 시작부터 줄곧 함께했으며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져 버린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딸 같은 존재인 ‘사라 코너’를 지키며 자기도 이제 늙었다며, 그러나 쓸모 없지는 않다며 담담하게 위로하는 그의 모습은 무뚝뚝하지만 속정 많은 아버지상을 보여준다. 함께 나이가 들어버린 관객들 입장에서 볼 때에는 향수와 그리움, 그리고 어느새 아버지가 되고 늙어 버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공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마지막 장면 역시 의미심장하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라는 영화 전체에 깔려져 있는 메시지는 이 영화가 ‘터미네이터’시리즈의 전설을 잇기 위해 새롭게 모색한 길이자 이 작품이 그저 단순한 볼거리에 치중한 오락 영화가 아닌,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 번쯤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철학적인 깊이를 가진 작품이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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