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왼쪽)과 배우 윤정희. ⓒJTN뉴스 [사진=유승관 기자]

[JTN뉴스 현화영 기자] 영화 '시'로 프랑스 칸을 뜨겁게 달궜던 이창동 감독과 배우 윤정희가 26일 서울 신촌 유플렉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 23일(현지시간) 폐막한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현지에서의 반응이 워낙 폭발적이다보니 많은 국내외 관계자들과 영화팬들이 '시'의 황금종려상 수상을 기대했던 게 사실. 한국영화 사상 최초의 세계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이 되지 않을까, 그 수상여부에 초미의 관심이 쏠려 있었다.

그러나 '시'는 각본상을 수상했고, 그 영예는 태국 영화 '엉클 분미'(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에게 돌아갔다. 윤정희가 여우주연상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 또한 빗나갔다. 여우주연상은 '서티파이드 카피'(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줄리엣 비노쉬가 차지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창동과 윤정희는 수상 결과와 관련해 내심 아쉬웠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세계적인 영화 축제에 참석한 것에 의의를 두며 만족스러운 소감을 밝혔다.

- '시' 각본상 수상이 발표되는 순간 이창동 감독 옆에 있었는데 어떤 기분이 들었나.

▲ 윤정희: 물론 영화에서는 시나리오(각본)가 가장 중요하다. 집을 지을 때 기초가 되는 것과도 같다. 프랑스 칸 현지에서는 영화가 대대적으로 환영을 받아 좋았다. 모든 언론과 관객들의 반응으로는 황금종려상을 꿈꾸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 윤정희 씨는 여우주연상을 두고 줄리엣 비노쉬와 경합을 벌였다. 수상을 못해 아쉽지는 않나.

▲ 윤정희: 세계 최고의 영화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노미네이트된 것만으로 기뻤다. 현지 신문에서는 감독님의 연출과 주인공인 '미자'에 대해 칭찬이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자했다. 시사회 후 칸 거리를 걸어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서는 내가 상 타기를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내 남편(피아니스트 백건우)과 딸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기자, 영화인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여우주연상보다 더 값지다"라고 말해줬다. 심사위원장인 팀 버튼 감독은 영화를 보고 직접 내게 와서 "당신 연기가 참 좋다"며 극찬을 해줬다. 나는 그런 것들이 상탄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 이창동 감독은 파리에 있다가 폐막식을 앞두고 다시 칸에 왔다고 들었다.

▲ 통상적으로 영화제에 참석한 감독이나 배우들은 어느 정도 수상에 기대를 하게 되면 폐막식까지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나는 칸에 계속 있기 조금 답답해서 파리로 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 우리나라와 프랑스 현지의 영화에 대한 반응을 바교해달라.

▲ 이창동: 국내 개봉과 칸에서의 소개가 거의 동시간대 이뤄져서 국내 관객들의 반응을 접하기 어려웠다. 내가 알기론 국내 시사회나 일반 관객들의 반응이 칸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안다. 어렵고 익숙한 문법의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외국인들도 정서적으로 강하게 반응하더라. 처음에는 제작진도 외국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무척 깊숙한 부분까지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모습에서 '영화문법은 보편적이구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하게 느꼈다.

- 인터넷 관객평들을 보니 엔딩장면에서 고(故) 노무현 전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 이창동: 마지막 장면에 미자가 죽은 소녀 '희진'의 마음을 대신해서 쓴 시가 나온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미자가 세상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를 힘겹게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그 자체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아픔이나 어두운 면까지 껴안아야 완벽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엔딩장면이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본다. 관객에 따라 특정한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릴 수 있다. 그게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 두 분 다 차기작을 준비중인지 궁금하다. 다음 작품에서도 만날 의향이 있는지.

▲ 이창동: 내 머릿속에 몇 가지 이야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숙성할지, 이야기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는 지금 자신하기 힘들다. 윤 선생님과 다시 작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인력(人力)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야기든, 영화든, 세상의 모든창조물은 의도를 갖고 만든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만들어지는 때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것이다.

▲ 윤정희: 나도 이 감독님 말씀에 공감한다. 사실 현재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시' 속의 미자가 계속 나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당장 어떤 작품을 하겠다는 마음은 없다.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 영화 속에서 이렇게 강하고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인물을 연기할 수 있었고, 감독님이 중간에 나를 생각하고 쓰셨다는 말씀에 더욱 감사했다. 앞으로의 일은 무엇이든 물 흐르듯이 자연에 맡기고 싶다. 서로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 나는 아마 좋은 작품을 만난다 하더라도 2년 내에는 못할 것 같다.

▲ 이창동: 만약 내가 영화를 더 오래할 수 있다면, 윤 선생님이 더 늙으셔서 더 주름이 하얗게 진다면, 선생님이 80-90대가 되셨을 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막연한 생각도 해봤다.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과 기회가 남아있다.

▲ 윤정희: 너무 기쁘다. 90살까지 영화배우를 하는 게 내 소원이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 이 감독님은 여러번 칸에 갔고 수상도 했다. 칸영화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 이창동: 칸영화제는 이미 세계 영화인들의 가장 큰 축제가 됐다. 영화를 평가하는데 있어서나 마케팅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자 축제의 무대다. 우리 영화에 있어서도 국내 뿐 아니라 세계 관객과 만나는 중요한 관문이 됐다. 그러나 칸영화제에서의 경쟁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영화라는 것은 각각의 미덕과 가치를 지닌 창조물이며, 올림픽처럼 기록을 재거나 승패를 가를 수 있는 것도 아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자연스럽게 경쟁의 결과에 연연하게 돼 스트레스도 많았고 부담이 됐다. 윤정희 선생님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내심 기대를 했다. 촬영할 때 노력을 많이 하시고 눈에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육체적으로 고생하셨기 때문에 상을 받을 수 있다면 작은 보상이 되리라 생각했다. 아쉽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다른 한국 영화인들을 위해 다음 기회를 모색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 윤정희: 상 타려고 실핏줄 터질 정도로 열심히 한 게 아니다.(웃음) 예전부터도 그렇고 그저 열심히 연기했을 뿐이다. 나는 처음 가보는 칸영화제였다.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팀 버튼과 인사를 나눴겠나. 영화제는 세계 모든 영화인들과 우정을 나누는 장소라 생각했다. 감독님과 함께 좋은 기회 갖게 돼 너무 좋았다. 최고였다.

- 감독 스스로 느끼는 '시'에 대한 만족도가 궁금하다.

▲ 이창동: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아는데 병적으로 나는 작품에 있어 소심한 사람이다. 지금도 사실 허물만 보인다. 관객 반응 등을 보면 그 부끄러움이 조금 잊혀지는 때도 있다. 그러나 영원히 그 마음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한다. 내 스스로 갖는 작품에 대한 평가나 엄격함이 계속 유지됐으면 한다. 나는 자학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나르시즘 따위는 없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고 힘들게 한다.(웃음)

- 파리에 거주하는 동안 한국영화의 발전상을 느꼈던 적이 있나.

▲ 윤정희: 한국영화의 발전상은 아주 많이 느끼고 있다. 남편 음악회 때문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과 한 잔을 기울이게 될 때가 많은데 내가 영화배우인 걸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게 되면 "요즘 한국영화 너무 잘 되고 있다"고 말씀들을 해주신다. 길가를 돌아다니다가도 르 몽드나 휘가로 같은 프랑스 유명 신문에 내 사진이 나오면 깜짝 놀라고는 한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날 알아보고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해준다. 앞으로 한국영화계가 자만하지 않고 잘 성장해서 계속 전 세계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으면 좋겠다.

- '시'가 칸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은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이창동: 어려운 질문이다. 각본상을 줄만한 작품들이 없어서? 작년에 나도 심사를 해봤는데 딱히 없더라.(웃음) 팀 버튼 감독이 내게 와서 "원래 칸영화제는 심사의 내용과 경과를 밖에서 얘기하지 않는 게 관례다. 그러나 '시'는 굉장히 감동적이고 마음을 많이 움직이는 영화였다"고 말해줬다. 칸의 사람들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정서적으로 잘 받아들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현화영 young@j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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