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픈 할머니가 어린시절의 작가에게 부탁한 것은 '만약 할아버지가 어딘가를 같이가자고 하면 절대로 가지 마라'는 알쏭달쏭한 당부였다.

별로 관심도 없던 그 당부에 관심을 갖고 어기기로 결심하게 한 것은 멜로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그에게 좋은 소재거리가 될 것 같다는 지인의 충고.

왠지 할아버지가 첫 사랑을 찾아 떠나는건 아닐까 하는 묘한 기대감에 함께 한 할아버지와의 여행은 좋은 멜로 드라마의 소재라기 보다는 밥은 꼭 제때 드셔야 한다는 고지식한 할아버지 덕에 고생길이 되어간다.

연극 '나와 할아버지'는 육즙 흐르는 잘 구어진 스테이크 보다는 깔끔한 국수 한그릇이 떠 오르는 작품이다.

작가의 경험을 그대로 무대에 옮겨논 소소한 이야기와 방대한 대사들은 정말 오래간만에 깔끔한 연극을 한 사발 후루룩 들이킨 담백한 기분이다.

억지로 웃기는 개그코드나 눈물을 짜내는 신파 없이도 정말 일상적인 대화라 더욱 돋보이는 발랄한 유머가 극을 보는 내내 관객들을 무대로 끌어들인다.

특히 작가가 직접 연출을 맏아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를 충분히 표현해 냈다는 것이 느껴지는 리얼리티 있는 장면들은 대학로의 잔뼈가 굵은 배우들의 제대로된 연기덕에 단순한 무대를 꽉 차게 도와준다.

본인들을 '공연쟁이'라고 칭하는 극단 '간다'에서 5년 만에 내놓은 작품인 만큼 잔잔하지만 꽤나 깊이 있는 연극.

여행의 끝이 아름다운 첫 사랑을 찾는 좋은 소재가 되어 줄지, 한 남자의 생을 돌아보는 인생의 기록서가 되어 줄 지는 관객에게 맡긴다.
 
 

JTN 윤하나 문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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