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N뉴스 임귀연 객원기자]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을 보면 간병인 없이는 꼼짝도 할 수 없는 반신불수의 백만장자 필립이 갤러리에서 그림을 감상하며, 사람들이 예술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얼마 전, 막을 올린 창작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인생은 짧았으나 그가 남긴 예술은 영원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다룬 2인극 창작 뮤지컬로, 유독 이 영화 속 대사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하는 작품이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제목 그대로 불우하였으나 불꽃같이 살다 간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인생과 그가 세상에 남긴 흔적들인 그의 작품들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이라 어찌 보면 뻔한 작품으로 비춰질 우려도 있다.

더군다나 척박한 국내 창작 뮤지컬의 제작 현실 속에서 창작 뮤지컬인데다 초연이기까지 한 이 작품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과 만날지 궁금함과 더불어 다소 걱정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별 기대 없이 만나 본 이 작품은 2인극이라는 그 형식에 걸맞게 고흐 형제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뜨거운 형제애를 집중력 있게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이룰 수 없다 해도 저마다의 꿈을 가슴에 간직한 채로 힘겹게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따뜻한 공감과 위안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수작이었다.

이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가 권총자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뒤, 그의 동생 테오 반 고흐가 형과 주고 받았던 편지와 그림들을 정리하며 그와의 추억을 더듬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형과 동생이 주고 받았던 편지 속 에피소드들을 통해 관객들은 화가 고흐의 삶을 관찰자의 시각에서 찬찬히 바라보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가 처음으로 화가의 꿈을 품으며 진심을 담은 그림을 그려서 언젠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리라 결심하는 순간, 세상의 인정과 관심과는 거리가 먼 무명 화가로서의 삶을 살며 마주하게 되는 차가운 현실들, 그리고 존경하던 동료 화가 고갱과의 만남과 결별. 그리고 그 속에서 경험하는 웃음과 눈물, 고뇌, 때론 좌절하는 순간들이 그가 남긴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듯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상을 적극 활용한 무대와 조명의 예술적 탁월함이다. 하얀색의 허전할 정도로 텅 빈 캔버스 같은 벽면 무대와 바닥이 공연이 진행되며 어느 샌가 빛으로 그린 그림처럼 어떤 때는 ‘고흐의 방’으로, 또 어떤 때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나 ’자화상’, ‘별이 빛나는 밤’이 되어 살아 숨쉬듯 꿈틀대며 시시각각 변모한다.

이처럼 섬세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무대미술의 시각적 요소들이 공연 내내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가슴을 설레게 한다.

또 하나의 미덕은 실제 고흐 형제가 주고 받았던 수백 통의 편지들과 사료들에 기반한 제작진의 철저한 자료 수집과 고증 과정이다. 그 때문인지 단 두 명의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빈센트와 테오 형제의 캐릭터가 더욱 설득력 있고 생명력 있게 다가오는 듯 하다.

특히 극 중 ‘라이언’이 연기한 빈센트 반 고흐는 불우한 미치광이 천재 화가라는 화가 고흐의 일반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미련할 정도로 이상적이며, 유리처럼 섬세하고 유약한 고흐의 인간적 면모를 잘 부각시켰다.

또한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언제나 형의 든든한 지지자이자 후원자로 형의 유작들을 정리해 세상에 알리려 죽음 직전까지 노력했던 동생 테오의 뜨거운 진심이 아릿한 감동을 준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낄 수 있다는 말의 의미처럼,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인생을 담아낸 이 공연의 말미에서 무대 위에 펼쳐지는 그의 명화들은 이 작품을 보기 전, 우리가 무심코 미술관에서, 책자 속에서 쓱 훑어 보고 지나쳤던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고 벅찬 감동을 선사해줄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말이 들려오면 그림을 그려라”고 말 할 정도로 죽을 때까지 그림밖에 몰랐던 바보였던 사람. 그가 그토록 전하고 싶었던 진심이 어떻게 시대를 초월해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지 직접 두 눈으로 꼭 확인해보자.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오는 4월 27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JTN 임귀연 문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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