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N뉴스 임귀연 객원기자]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 위에는 네 개의 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암전이 되면 어둠 속에서 배우들의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 온다.

이윽고 무대가 밝혀지면, 네 명의 배우가 의자에 앉아있는 게 보인다. 이렇게 가까이서 관록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광경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다.

이 때,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했을 관객들에게 한 배우는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여러분들이 일찍이 듣지도 못했던 걸 여기서 듣게 되리란 기대는 마십시오. 또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나 곧 관객들은 이전에 상상해 본 적이 없었던 ‘말들의 향연’에 빠져드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연극 ’관객모독’은 1966년, 독일 작가 페터 한트케를 연극계에 화려하게 데뷔시킨 작품으로, 국내에는 1977년 이후 30년이 넘도록 숱하게 공연되며, 국내 연극계에 센세이션을 불러 온 문제작이다.

특히 2014년 ‘관객모독’은 그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기국서 연출과 기주봉, 정재진 등 관록의 배우들을 10년 만에 다시 무대 위에서 한데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더욱 더 큰 의미가 있다.

“연극은 보는 게 아닙니다. 연극은 놀이도 아니고 엄격하게 연출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단지 형상이 없는 연극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연극 ’관객모독’은 관객들이 연극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아무런 사건도 없이, 배우들이 관객의 눈 앞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 오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배우들의 즉흥적인 말장난 속에 담긴 말들을 하나하나 새겨들으며 그 의미를 직접 해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렇게 공연 내내 알 듯 말 듯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적인 대사들이 관객들의 머리와 가슴을 끊임없이 헤집어 놓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내 배우들의 말로만 진행되는 그 여정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점이다. 오히려 관객들에게는 처음 보는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여행자가 된 것 마냥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게 다가와서 한시도 눈을 떼기 힘들 정도다.

특히 이 작품 특유의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형식이 톡톡히 재미를 선사한다. 네 명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노련한 재즈밴드의 즉흥 연주처럼 자유자재로 변주를 만들어 낸다.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언어유희들은 그 자체로서 관객들에게 강렬하고 신선한 자극의 연속이 된다. 또한 수많은 대사들은 논문의 한 대목처럼 깊이 있고 대단히 철학적이다.

이를테면 박수를 치는 관객의 사소한 행동마저도 특유의 정제된 언어로 대단히 치밀하게 묘사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보는 이에게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새롭게 재인식하는 지적 자극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재미는 관객들이 또 하나의 배우로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데에 있다. 극 속에 또 다른 극에서는 배우들이 관객을 이끌어내 같이 연기하기도 하며, 관객들이 연출자가 된 양 자유롭게 의견을 내도록 만든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그저 본연의 자신처럼 편하고 자연스럽게 관객들과 소통하며 반응을 이끌어 낸다.

심지어 그 유명한 모독 장면에서도 “어디 한 번 우리들한테도 욕해보시지.” 라며 관객들을 한껏 도발한다. 이 자유롭고 허물없는 분위기가 관객들에게는 엄숙한 연극 무대가 아닌, 콘서트나 팬 미팅에 장소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 정도다.

연극 ‘관객모독’은 일정한 형태가 없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특히 누구 앞에서 상연되는가에 따라 단 하나 같은 모습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현장성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몇 번이고 다시 보더라도 신선하게 그 작품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게 크나큰 행복이 될 것이다.

따라서 연극 ‘관객모독’이 관객을 모독하는 연극이라고 미리부터 겁 먹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무대 위 배우들의 진심을 느끼며, 한바탕 웃고 즐기는 유쾌한 경험이 될 거라 기대해 보면 어떨까.

직접 보기 전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연극 ‘관객모독’은 오는 6월 1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JTN 임귀연 문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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