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의 서양 예술은 다양성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현재 유행하는 퓨전의 원조 격이라 하겠다. 여러 예술이 교류하면서 상호 발전적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회화와 음악의 교류는 괄목할 만하다. 러시아의 국민주의 음악가 모데스트 무소륵스키는 친구의 그림에서 모티프를 얻어 걸작 ‘전람회의 그림’을 남겼다.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상징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의 명작 ‘죽음의 섬’과 이름이 같은 교향시를 남겼다. 그런가 하면 인상주의 음악가 드뷔시는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교향시 ‘바다’를 작곡했다. 음악은 주로 미술에서 이미지를 가져오거나 모티프를 얻었다.

이에 비해 미술이 음악으로부터 받아들인 예술적 에너지는 매우 컸다. 특히 20세기 미술이 방향을 정하는 데 음악이 의미심장한 영향을 미쳤다. 추상의 탄생은 음악의 순수 추상성에 자극받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 제임스 휘슬러는 음악의 화성적 조화를 색채로 옮기는 데 화업(畵業)의 전부를 바쳤다.

서양 추상미술의 시조라고 불리는 바실리 칸딘스키는 음악의 즉흥성과 추상적 요소에서 추상화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 초현실주의 화가 파울 클레 역시 음악의 추상성에서 동화적 환상미를 창출해냈다. 심지어 음악적 율동미를 색채의 변화와 곡선으로 나타내 움직이는 화면을 연출한 로베르 들로네의 회화는 ‘오르피즘’이라는 미술 운동으로까지 발전했다.

음악을 가장 친근하게 회화에 담은 화가로는 단연 라울 뒤피(1877~1953)가 꼽힌다. 행복한 이미지를 밝고 화려한 색채와 경쾌한 선으로 표현해 대중적 선호도가 높다. 이는 당시 시대 흐름과 무관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회화를 완성하는 데 열중했던 작가적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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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