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에게 신화는 상상력의 보물창고와 같다. 비유와 상징으로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서양미술은 신화 해석의 역사라 해도 크게 어긋나는 주장이 아니다.

성서와 더불어 서양미술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다. 그중에서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아름다운 청년 나르키소스 신화는 미술가들에게 매력 있는 주제로 꼽힌다.

자기애가 강한 예술가들의 구미에 꼭 맞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미모를 지닌 나르키소스는 뭇 여성들에게서 구애를 받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를 괘씸히 여긴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나르키소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빠져 버린 나르키소스는 점점 시들어 갔고, 결국은 꽃으로 변해 버렸다.

이것이 ‘수선화’(나르키소스)인 것이다. 나르키소스 신화는 많은 작가에 의해 작품으로 태어났다. 그중에서 초기 바로크 시대 천재 화가 카라바조의 작품과 함께 걸작으로 꼽히는 것이 살바도르 달리(1904∼89)가 그린 ‘나르키소스의 변신’이다. 이 작품은 신화의 서사적 구성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나르키소스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장면으로 그려냈다는 얘기다. 천재들의 공통적 특징인 편집광적 성격과 자기애가 강했던 달리의 이 작품에는 자화상적 분위기가 담뿍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달리는 이 작품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초현실주의 대가답게 환상적 풍경으로 훌륭하게 연출하고 있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빠져 있는 인체와 계란을 들고 있는 앙상한 손의 병치에서 달리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읽을 수 있다. 알을 뚫고 나오는 수선화는 신화를 그대로 재현하는 구성이지만 달리다운 표현력 덕분에 자연스러워 보인다. 파란 하늘과 검은 뭉게구름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형태의 검붉은 산과 계곡이 연출하는 배경에서 이곳이 현실 속의 풍경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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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