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각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니체)

일찍이 볼테르는 말했습니다. “우리들의 부싯돌은 부딪혀야 빛이 난다”고. 여자는 이상하리만큼 적극적이고 자유롭습니다. 반면 남자는 심하게 부끄러움을 타고 매사에 우유부단합니다. 여자와 남자는 다른 성격에 이끌려 불꽃을 피워내지만, 시간은 그와 똑같은 밀도의 마찰과 권태를 만들어냅니다. 상처는 깊은 강이고, 연약한 마음은 얕은 뭍이어서 그들은 서로의 기억을 밀어내려 합니다.

기억이란 생의 흔적이에요. 그리고 사랑은 마음의 길을 따릅니다. 길을 가다가 다른 삶이 불쑥 끼어들기도 하고 다시 튕겨 나가기도 하겠지요. 남자는 억지로 지우려 했던 사랑의 기억을 뒤미처 복구하려 하지만, 굳이 되돌리지 않아도 그것은 이미 심장에 고스란히 각인된 걸요. 기억은 삭제되어도 마음은 남는 것이어서 우리의 사랑은 계속됩니다.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이별의 시간이 왔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간다. 나는 죽고 너는 산다. 어느 것이 더 좋은가는 신만이 아시리라”고. 그래요, 우리는 매순간 이별을 겪어요.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각자의 길을 갑니다. 그러다가 시간이라는 그물 속에서 또다시 엉킬 수도 있겠지요. 혹은 미세한 물결에 미끄러져 어긋나기도 할 테지요. 어느 것이 더 좋은가는 신만이 알 거예요. 그리고 삶은, 사랑은, 여전히 흐릅니다.

Tip!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을 집필했던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먼’은 기억의 씨실과 날실을 교묘히 엮어 역설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이 영화로 2005년 아카데미에서 각본상을 수상합니다.


권선혜 book@j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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