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나는 흔들리네

온 가족이 모인 단란한 한때 한 청년이 찾아옵니다. 덩치는 산만해서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모습이 다소 엉성해 보입니다. 가족들 모두 그를 웃으며 환영했지만 왠지 모를 어색한 기류가 감돕니다. 이날은 맏아들의 기일이기도 했지요. 십년 전 청년을 구해주고 떠나버린 아들을 어머니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의사였던 아들을 대신해 살아 있는 별 볼일 없는 그가, 아들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는 이 청년이 어머니는 아직도 원통합니다.

그날 저녁 작은아들은 어머니에게 청년을 이제 그만 부르라고 말합니다. 그가 매년 찾아오며 괴로워하는 게 안쓰럽다고. 어머니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게 하는 거라고 나지막이 대답합니다. 증오할 상대가 없으면 괴로움은 더한 거라고. 흔들리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사실 어머니의 마음은 마구 흔들렸습니다. 그녀는 단단히 묶어놓은 슬픔을 일 년에 한 번씩 청년을 보며 조금씩 흘려보냈던 거지요.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옛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걸어도 걸어도 흔들립니다. 살아도 살아도 휘청거립니다. 그리고 생의 어떤 사건은 멈추지 않는 여진이 되어 가슴 깊은 곳을 내내 흔들어댑니다. 마음은 관성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삶의 길은 여전히 새 길입니다. 어머니에게 이 한 줌의 비정함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요.

속수무책인 이별 앞에서 우리는 여러 자세를 취합니다. 홀로 틀어박히거나 무리에 섞여 지내기도 하고,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받거나 생채기를 새기기도 합니다. 다만 한 가지, 남겨진 자들은 흐르는 시간에 기대 묵묵히 견딜 뿐입니다. 우리는 그저 보통 사람이므로.

히로카즈 감독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본인이 작성한 메모와 그녀가 말한 것들을 바탕으로 이 영화의 각본을 썼다고 합니다. 극중 어머니 대사의 절반 정도는 실제 감독의 어머니가 자주 썼던 표현이라고 하네요.

권선혜 book@j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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