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위에서 우리 소문이 무성합니다.
- 우리만 결백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JTN뉴스] 사랑은 찰나입니다. 한순간 피어나는 섬광이고, 순식간에 치명으로 번지는 홍역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각자의 배우자가 연인 사이임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바로 옆집에 살며, 배우자와 같은 소지품을 한 서로를 바라보며, 그 사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그 뼈아픈 확인은 그들 사이에 애틋한 여백을 만들죠. 그들은 한 뼘 간격을 두고 서로의 주변을 맴돌며 안타깝게 미끄러집니다.

그들은 다만 고독했습니다. 고독은 도피를 부르는 법이죠. 자기 안으로만 도피하던 그들은 마침내 서로에게 기댑니다. 아주 복잡하고 곤란한 일이 그들 앞에 이제 막 시작된 것이죠. 물론 처음에는 아니었습니다. 아픈 그를 위해 참깨죽을 끓이는 사이, 혼자 먹던 국수를 함께하게 되면서, 천천히 시작됐습니다. 좁디좁은 아파트 복도를 몇 번이나 스치며 버거웠던 마음이 닿고 말았습니다. 어느 순간 불현듯, 그렇게 되고 말았지요.

‘화양연화’란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뜻합니다. 사랑은 찰나인 거라 그들에게도 이별이 찾아옵니다. 주위에 소문이 무성하니 이별연습을 해보자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은 늘 돌이켜야 한다는 것을. 늘 기억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고은 시인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 말했지요. 서로가 서로의 꽃임은 산을 내려갈 때 보거나, 영영 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스쳐 지나고 말지라도 산에 꽃이 없다면 그것은 혼자 먹는 국수처럼 쓸쓸하고 먹먹한 일일 거예요. 절망적인 땅에서도 꽃은 어김없이 다시 피게 마련이니, 눈을 크게 뜨고 생을 마주보시길. 그리고 꽃과 마주친다면 왜 거기 있느냐 묻지 말고 그냥 다가가시길. 당신의 황홀한 찰나를 위하여!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 양조위는 고독한 삶의 찰나를 훌륭하게 연기하며 제53회 칸영화제(2000)에서 남우주연상을 차지합니다.


권선혜 book@j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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