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씨네앨범] 고통의 밤에는 춤추는 별이 탄생합니다
어둠 속에서 별은 더 빛나는 법입니다. 고통스러운 밤이라면 춤추는 별이 탄생할지도 모르지요..

** 조용한 혼돈(Caos Calmo, Quiet Chaos, 2008) - 감독 안토니오 루이지 그리말디 **
-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니체)
[JTN뉴스] 남자는 다만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딸의 학교 앞 벤치에 하릴없이 앉아 딸을 지켜보거나 신문을 펼칩니다. 매일아침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여인과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날마다 마주치는 다운증후군 아이와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얼마 전 남자는 남동생과 해변에 놀러가 익사 직전의 여자를 구했지요. 그리고 여자가 기적처럼 살아난 바로 그 순간, 집에 있던 남자의 아내는 기적처럼 목숨을 잃었습니다. 남자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너무도 조용합니다. 조용한 혼돈. 불가사의한 생 앞에서 그는 오늘도 그렇게 혼돈과 인사하고 장난칩니다.
남자의 딸은 학교에서 ‘회문’(回文)에 대해 배웁니다. 회문은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뜻이 같은 문장을 뜻하지요. 남자에게는 사는 일 전부가 혼돈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정치적 음모와 견제가 난무하고, 남자는 아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아내가 있든 없든 세상은 여전히 거대한 태풍입니다. 거친 돌풍을 피해 여기 이곳에 앉아있지만, 그것은 마음 깊숙이 있는 거라 그 자장은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반복되는 삶은 회문에 갇힌 채 이리저리 휘청거립니다. 너무도 적막하게.
이성복 시인은 “이 길은 돌아 나올 수 없는 길. 시는 스스로 만든 뱀이니 어서 시의 독이 온몸에 퍼졌으면 좋겠다. 참으로 곤혹스러운 것은 곤혹의 지지부진이다”라고 말했지요. 이제 남자는 태풍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갑니다. 여태 위태로운 바람을 타고 왔으니 더 이상 두려운 것이 대체 무얼까요. 어둠 속에서 별은 더 빛나는 법입니다. 고통스러운 밤이라면 춤추는 별이 탄생할지도 모르지요. 이 생은 돌아 나올 수 없는 길. 생은 스스로 만든 고통이니 어서 생의 독이 온몸에 퍼지길.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고통의 지지부진이니.
이 영화에서 혼돈한 삶을 세밀히 묘파한 남자주인공 ‘난니 모레티’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영화 ‘아들의 방’(2001)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권선혜 book@j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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