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N뉴스 임귀연 객원기자] 지난주 개봉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노아'는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노아의 방주라는 성경 속 소재와 세계관이 어떻게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로 재창조되었을까 하는 기대심리와 더불어 러셀 크로우, 안소니 홉킨스, 제니퍼 코넬리, 엠마 왓슨 등 화려한 배우진은 개봉 전부터 관객들이 '노아'를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영화 '블랙스완'으로 전문가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이름값이 더해져 '노아'의 개봉 첫 주 예매율은 무려 60퍼센트가 넘을 정도로 뜨거웠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결과에 따르면 개봉 첫 주에만 무려 113만명이나 되는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을 정도로 객관적으로는 역대 3월 개봉 영화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흥행몰이를 하고 있지만, 직접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개봉 직전의 폭발적인 기대와 달리 별반 신통치 않다. 무엇보다 관객들의 호불호도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직접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 '노아'가 '타이타닉'이나 '해운대'처럼 재난을 다룬 다른 블록버스터와는 다소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포스터를 가득 채운 거센 파도나 배우들의 이름값만 믿고 생각 없이 극장을 찾았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영화 '노아'의 주인공은 온 세상을 휩쓴 대홍수의 스펙터클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독은 대홍수 이후, 유일하게 생존한 인류인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겪었을 법한 전쟁보다 더 참혹한 상황들을 치밀하고 집중력 있게 그려내려 애쓰고 있다.

영화 '노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 부분은 노아가 창조주의 계시를 받아 방주를 만들어 다가올 재앙에 대비하는 대홍수 이전의 이야기이고, 뒷부분은 대홍수 이후, 방주 속에서 펼쳐지는 노아 가족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전개된다. 
 
앞 부분은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여정이 마치 판타지 영화처럼 펼쳐진다. 특히 노아가 창조주의 계시를 받는 몇몇 장면들에서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힘들게 만드는 세련된 영상미학과 절묘한 편집이 돋보인다.

또한 창조주의 계시를 받은 유일한 인간인 노아의 든든한 조력자로 영화 전반부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감시자라 불리는 타락천사 무리들은 마치 판타지 영화를 보는 듯한 많은 볼거리들로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대홍수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방주를 타기 위해 몰려오는 수많은 인간들을 사력을 다해 저지하는 감시자들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인데, 마치 순교자처럼 하나 둘 쓰러지며 끝내 빛이 되어 환희에 차서 사라지는 모습은 숭고해 보이기 까지 한다.

뒷 부분에서는 창조주의 대리인이자 심판자로서 선하고 정의로운 인물로만 그려졌던 노아가 가족들을 향한 인간적인 정과 신의 계시를 집행해야 하는 신념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고 번민하는 모습이 치밀하게 그려진다.

이 대목에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전작 '블랙스완'에서도 돋보였던 인간 내면의 어둡고 은밀한 욕망에 대한 묘사라든지, 가족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노아가 한 순간에 피도 눈물도 없는 광신도로 비춰지게 되는 아이러니한 극적 전개가 돋보인다.

감독의 제작노트에 따르면, 창조주의 대리인으로서 새로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을 만큼 취하고, 아들들에게 험한 욕을 퍼부었다’고 하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어 이에 착안하여 노아에 대한 콘셉트를 정하고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의 뒷부분에서 갈등의 씨앗으로 변모하는 일라와 노아의 둘째 아들인 함은 영화 속에서 긴장감을 불어넣는 중요한 캐릭터들이다. 그런데 러셀 크로우가 무게감 있게 열연한 지극히 인간적인 노아의 모습은 설득력을 주지만, 그의 둘째 아들 함이라는 캐릭터는 흥미로웠으나 도무지 그 행동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지나치다 느껴질 정도로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들은 영화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정리하면, 영화의 앞 부분은 충분한 볼거리는 있었으나 긴장감이 부족했다. 일례로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과정이 역경 하나 없이 참 순조롭다. 반면, 영화의 뒷부분에서는 '라이프 오브 파이'처럼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인물간의 갈등이 고조되는데 이때에 치밀한 심리 묘사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영화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들이 불편함과 지루함을 주었던 건 사실이다.

이 영화 속에서 감독은 인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 내면의 복잡하고 불안정한 속성들을 과감 없이 사실적이고 치밀하게 그리려 애쓴다.

다만 대홍수라는 스펙터클 속에서 이런 감독의 의도가 잘 조화를 이루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치 두 마리 토끼를 욕심 냈던 결과처럼 극적인 긴장이 느슨해지고,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기에는 다소 억지스러웠던 부분이 눈에 띄어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영화 '노아'는 성경 속 노아의 방주라는 텍스트에 기반해서 다양한 볼거리와 상상력을 갖춘 판타지 영화이자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재창조된 심리극이다. 그 속에 담겨있는 철학적인 메시지들과 복잡하지만 섬세한 심리 묘사들은 영화를 곱씹어 보며 감상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가볍게 즐기기에는 다소 복잡하고 지루할 수 있으나, 전형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기대만 버리고 본다면,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나 러셀 크로우 같은 쟁쟁한 제작진의 명성에 실망스럽지 않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JTN 임귀연 문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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