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의 호소력 짙은 연기...관객들 눈물샘 자극

[JTN뉴스 임귀연 객원기자]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국제시장’이 연말 극장가에 뜨거운 흥행 열풍을 만들어내고 있다.

개봉 4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올해 천만 관객을 넘었던 한국 영화 ‘변호인’과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되기도 한다.

영화 ‘국제시장’은 ‘변호인’과 그 뜨거움이 많이 닮아있다. 한국인들이 무척 사랑하는 선 굵은 두 배우 송강호와 황정민이 각각 출연하는 점에서도, 한국 현대사의 치열했던 시기를 다뤘다는 면에서도.

그러나 다른 점은 변호인이 어느 평범한 사람이 특별해질 수 있었던 특정 이야기를 부각시켜 어느 파란만장하게 살다 간 한 인물을 추억하게 한다면, 영화 국제시장에서는 어느 평범한 인물의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인생사를 조명하여, 그 때 그 시절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의 보편적인 삶을 공감하고 추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영화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수 십 년 간, 가게 ‘꽃분이네’를 지켜 온 꼬장꼬장하고 고집불통이인 ‘덕수’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한 쪽 다리가 불편하고, 살아 온 세월만큼 주름살 투성이인 어느 평범한 노인의 굴곡진 인생을 들여다보며 관객들은 저마다 때로는 그간 믿기지 않아 허풍으로만 치부하며 들어 넘겼던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살았던 그 때 그 시절을 대리 체험한다. 

한국 전쟁 당시, 흥남 부두의 급박했던 피난 행렬 속에서 아버지와 여동생을 두고 생이별해야 했던 아픔을 겪어야 했던 ‘덕수’는 부산으로 피난와 고모네 얹혀 살며, 장남으로서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들을 지켜내기로 결심한다. 묵묵히 아버지 대신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장남으로서의 삶은 참으로 눈물 겹다.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것도 모자라 목숨을 걸고 먼 타국에 광부로 가 일하기도 하고, 베트남 전쟁에도 돈 벌러 다녀오는 등 죽을 위험을 몇 번이고 넘기며 갖은 고생을 다 한다.

이리하여 동생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고, 고모의 가게도 지키고, 누이의 결혼식에는 아버지 대신 자리를 지키지만, 정작 자신의 늦깎이 대학합격증은 허공에 내던질 수 밖에 없었다.

박복한 형편에도 그 역시 ‘영자’라는 이름의 한 여자를 운명처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영화 속에서는 그런 ‘덕수’의 모습을 통해 평생 자기를 위해 한 순간도 살지 못하고 가족들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고 희생해야 했던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특히 그 험난한 시절의 이야기가 눈물 뿐 아니라 주, 조연 배우들의 호연 속에서 밝고 경쾌한 웃음과 훈훈한 미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것은 이 영화가 대중영화로서 갖는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영자’ 역을 맡은 김윤진은 할머니 역할로 연기할 때의 목소리 등이 다소 어색한 점이 없지 않았지만,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여인상으로 힘들었던 시절에 아름답게 피어난 ‘사랑’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또한 영화의 주인공 ‘덕수’ 역의 황정민은 마치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인물 그 자체가 된 듯 투박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연기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한없이 자극한다.

또한 황정민, 오달수의 콤비연기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던 영화의 적절한 쉼표가 되었고, 그 시절의 문화적 코드를 영리하게 담아내는 장면들은 자연스레 관객의 폭소를 유발한다.

‘덕수’가 애국심 투철로 기어이 파독광부로 선발되는 장면이라든지, 베트남 참전 결심으로 옥신각신 다투던 ‘덕수’와 ‘영자’의 싸움이 갑자기 흘러나온 애국가로 종지부를 찍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명 장면으로 꼽힐 만 하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눈 여겨 볼 만한 점 중 하나는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비슷한 맥락의 장면들이다.

롱테이크로 깃털(포레스트 검프)과 나비(국제시장)를 쫓아가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시작해서 어느 한 개인의 이야기를 굵직굵직한 현대사 속에 기막히게 잘 녹여낸 점에서 ‘국제시장’은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를 연상시킨다.

이를테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 속에서 ‘앨비스 프레슬리’나 ‘케네디 대통령’, ‘존 레논’ 등 여러 사회,문화,정치적 코드들이 등장하는 것처럼 영화 ‘국제시장’에도 그 때 그 시절의 ‘정주영’, ‘앙드레김’, ‘이만기’, ‘남진’ 등 유명인사들이 ‘덕수’를 우연처럼 스쳐 지나가듯 등장해 픽션으로서 영화의 재미를 더해 준다.

한편 영화 ‘국제시장’에서는 현재와 과거의 시점을 매끄럽게 연결해주는 연결고리들이 여럿 등장한다. 이를테면 동남아 외국인 커플을 철없이 놀리는 어린 학생들에게 역정 내는 덕수 할아버지의 모습은 파독광부 시절의 기억으로, 그가 나훈아보다 남진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죽을 위기에서 살아난 베트남 시절로 전환되는 전환점이 되는 것처럼.

이러한 시간 여행 과정 속에서 ‘포레스트’라는 인물의 인생이 미국 현대사를 담담히 상징하듯 ‘덕수’의 인생 궤적 역시 굵직굵직한 굴곡으로 점철되어 있던 한국 현대사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또 다른 볼 거리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국제시장’의 변천사이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한 듯 철저한 고증으로 그 시대의 간판이나 거리의 모습, 의복, 소품 등을 디테일 하게 모사하고 있는 국제시장의 50년대부터 80년대, 그리고 현재의 모습은 ‘덕수’의 인생이자 흘러가는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종국에는 평생의 한이었던 생이별한 누이를 이산가족상봉 방송 프로그램에서 기적처럼 찾았던 ‘덕수’는 파란만장한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듯, 가슴 속에 묻은 아버지를 향해 묻는다. “아부지…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요?”라고.

누구에게나 드라마가 있다. 다사다난했던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살았던 수 많은 이의 인생 속에도 이 영화 속 ‘덕수’ 할아버지가 그렇듯 한 편의 영화처럼, 저마다 뜨겁고 가슴 벅찬 인생 드라마가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누군가는 ‘그래. 그땐 그랬지’라는 공감으로, 다른 누군가는 안쓰러움과 연민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공통적으로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우리네 ‘아버지’들을 떠올리고 눈시울을 젖게 만드는 영화 ‘국제시장’이었다.

JTN 임귀연 문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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