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록물고기(Green Fish, 1997) - 감독 이창동 **

- 여보세요, 여보세요? 큰성, 생각나? 빨간색 철교. 우리 어렸을 때 빨간 다리 밑으로 물고기 잡으러 간다고 갔다가 쓰레빠 잃어버려 가지고 큰성이랑 형들이랑 쓰레빠 찾는다고 놀지도 못하고… 큰성, 그때 생각나?”

군대를 제대하고 돌아온 ‘막동’(한석규)을 기다리는 것은 고층건물이 빽빽이 들어찬 고향과 뿔뿔이 흩어진 가족뿐입니다. 세상은 변해가는데 그에게 부여된 삶의 무게는 여전한 것이어서 그는 조직 폭력배 아래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온 식구가 함께 사는 그날을 꿈꾸며 절박한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것은 꿈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오롯이 책임져야 할 생계의 문제이자 현재의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했거든요.

살해 직후 막동은 공중전화박스에서 뇌성마비 장애자인 큰형에게 전화를 겁니다. 하지만 빨간 다리 아래에서 물고기 잡는 풍경은 빛바랜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이지요. 움켜쥘수록 빠져나가는 시간처럼 그것은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꿈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 무참한 일은 진정 행복을 위한 길이었을까요.

마지막 시퀀스에서 막동의 식구들은 다리 아래의 식당에 다 같이 모여 즐거운 한때를 보냅니다. 꿈의 원인과 과정과 결과는 한자리에 있는데 꿈을 꾸던 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막동은 차라리 스스로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초록물고기가 되었습니다. 불안한 미래와 쓰라린 현실을 끌어안고 빠르게 흐르는 물을 역류해 찾아간 그곳에서 그는 과연 꿈을 봤을까요?

 Tip!  이 영화는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을 만든 이창동 감독의 첫 번째 영화입니다. 그의 다섯 번째 영화는 원로배우 윤정희 주연의 ‘시’로 2010년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권선혜 book@j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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