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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씨네앨범] “내 고통을 이해한다니요, 천만에요”

여자는 새 삶의 그림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무엇이든 믿으려 했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것을, 아이를 유괴로 잃고 나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 밀양(Secret Sunshine, 2007) - 감독 이창동 **

- 밀양이라는 이름의 뜻이 뭔지 알아요?
- 한자로 비밀 밀(密), 볕 양(陽). 비밀의 햇볕. 좋죠?

한 여인이 어린 아들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밀양이라는 낯선 곳을 택한 것은 그곳이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그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햇볕입니다. 그 따뜻한 햇볕 속에서는 모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카센터를 운영하는 한 남자가 여자 곁에 머무르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사라진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여자는 다급한 마음에 남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그 남자, 흐르는 일상의 한가운데 놓여 열창중입니다. 방에서 홀로 마이크까지 잡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남자의 저 오롯한 시간을 과연 침범할 수 있을까요. 여자는 멀거니 지켜보다가, 문득 돌아서고 맙니다. 아이와 둘이서 살아가는 여자에게 누군가의 시선은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새 삶의 그림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무엇이든 믿으려 했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것을, 아이를 유괴로 잃고 나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런데 햇볕은 이제 누설되지 않은 비밀처럼 위태롭기만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곧 이해받길 바란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각자가 어쩔 수 없이 지녀야 할 저마다의 고통마저 위로받고 구원받기란 참 어렵고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녀의 처절한 절규는 미처 이해받지 못한 통곡인 것입니다. 절망은 오로지 혼자 버티고 견뎌내야 하는 것. 치열하게 겪고 당하고 앓아야 하는 것. 하늘에서 시작한 영화는 땅으로 끝을 맺습니다. 황량한 바닥에 밀알 같은 빛이 가만히 흘러듭니다. 그리고 가장 낮은 자세로 오래오래 머무릅니다. 결국 스스로 빛이 된 어느 한 여자처럼.

 Tip!   전도연은 이 영화로 2007년 제60회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권선혜 book@j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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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권선혜 기자 press@jtn.co.kr
  • 기사입력 : 2010-02-2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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