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 억만장자’의 가면에 감춰진 토니 스타크의 진짜 얼굴을 아는 사람.

전편에서 토니에게 헌신적인 개인 비서 버지니아 페퍼포츠는 '아이언맨 2'에서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CEO로 파격 승진한다. 토니의 생명을 여러 차례 구한 은공이 그 정도로 갚아질 리 없지만, 페퍼포츠의 심정은 복잡하다. 직분 탓에 상사를 남몰래 도와야 하는데, 그 앞에만 서면 설레는 가슴을 어쩔 수가 없는 것. 그렇다고 사적인 감정에 휩쓸려 세계 평화 구현이라는 거창한 과업을 그르칠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이성적이고 프로의식이 투철한 페퍼포츠는 이번에도 토니와 은근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거뜬하게 자신의 몫을 다해낸다.

“'아이언맨 2'에서 토니와 페퍼포츠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하지만 페퍼포츠는 유유자적 연애 놀음에 빠져 있을 여유가 없다. 중책을 맡아 더 바빠지거든!”(웃음) 페퍼포츠 특유의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익숙한 현장에 돌아온 기네스 팰트로는 “페퍼포츠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다”며 미소 짓는다. 업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면에서의 성장이다. '아이언맨' 크랭크 업 이후 6개월 만에 재회한 존 파브로 감독은 그녀에게 ‘신뢰’라는 단어를 재차 강조했다. 자신의 정체를 만천하에 폭로한 히어로에게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만큼 절실한 존재가 어디 있으랴. 페퍼포츠는 자신만만한 토니의 겉모습 너머로 정의롭고자 하는 그의 선한 내면을 꿰뚫어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배트맨에게 집사 알프레드가 있다면 아이언맨에게는 페퍼포츠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최강 수트에 목매는 토니의 측근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 아닌가. “토니는 상처받은, 복잡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지닌 어두운 내면과 동시에 그 악마적인 성향을 극복하려는 희망을 상징한다. 욕망의 의인화인 셈이다. 반면 페퍼포츠는 이성을 대변한다. 그녀는 토니를 보좌하고 제어하며 새로운 세상을 배운다.” 그러나 공석이 된 개인 비서 자리에 육감적인 금발 미녀 나타샤 로마노프가 등장하면서 페퍼포츠의 ‘역할’은 타격을 입는다. 훗날 러시아 스파이 블랙 위도우로 밝혀지는 나타샤는 젊고 우아한 자태로 토니의 마음을 뒤흔든다. 페퍼포츠의 심장도 은근슬쩍 널뛰기는 마찬가지다('아이언맨 2'에서 아픈 만큼 성숙한 인물은 토니만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금발 미녀와 친하게 지낼 수 없는 이유가 있다니까.”(웃음)

아무것도 없이 휑한 그린 스크린 앞에서 고요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연기하며 기네스 팰트로는 영화의 장면을 조각조각 맞춰 나갔다.

스크립트도 없이 촬영을 준비했고, 플롯을 채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괘념치 않았다. 전편의 경험을 통해 존 파브로를 믿는 것이 최선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존은 가급적 라이브 액션을 이용하려 했고, 장면이 사실적으로 보이기를 바랐다. 새로운 차원을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린 스크린이 필요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연극 무대를 떠올리며 상상력을 발휘했다. 처음 컴퓨터그래픽 작업이 더해진 '아이언맨'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물론 토니가 악당과 싸우는 액션 신만 즐비했다면 감흥은 덜했을지도 모른다. 존 파브로와 제작진의 솜씨는 남달랐다. '아이언맨' 1, 2편은 풍자적인 유머와 강렬한 캐릭터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현실적인 수퍼 히어로 무비로 완성됐다. “로버트와 존이 입버릇처럼 말한 것처럼, 결과적으로 너무 재밌는 작업이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낸 기네스 팰트로. 수퍼 히어로 무비 데뷔작인 '아이언맨' 시리즈의 성공에 탄력받아, 컨트리 가수로 변신한 차기작 '러브 돈 렛 미 다운'과 출연 대기 중인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재난 영화 '컨테이전' 등 다채로운 작품에서 선보일 그녀의 활약상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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