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감독의 스타일로 완성된 ‘2010년판 하녀’
자극적인 도입과 결말에 비해 사건은 약화돼

**감독 임상수/제작 ㈜미로비전/106min/청소년 관람불가/5월13일**

[JTN뉴스 현화영 기자] ‘하녀’란 제목 자체가 요즘과는 잘 맞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임상수 감독은 배제할 것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가지고 갈 것들은 가져가며 자신만의 색채로 2010년판 ‘하녀’를 완성해냈다.

잘 알려졌듯이 영화 ‘하녀’는 고(故) 김기영 감독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 50년이란 시간의 간극이 영화에 그대로 묻어남과 동시에 영화적 미학과 기법의 진보도 느껴진다.

무엇보다 2010년 ‘하녀’의 미덕은 스타일(형식)에 있었다. 감독은 의상, 미술, 카메라 기법에 있어 군더더기 없는 스타일로 감각적이고 세련된 영상을 선사한다. 에로틱 서스펜스라는 장르명에 어울리는 음침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칼라와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 간결한 몽타주가 돋보인다.

사회상의 변화 역시 잘 포착했다. 1960년에 만들어진 고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급속한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형성된 중산층 가정에 식모로 들어간 농촌 출신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다면, 임상수 감독은 중산층이 무너져가는 현 시점에 주목하며 상위 1% 부잣집 대저택에 고용된 유아교육과 출신의 전문직 여성을 ‘하녀’로 그린다.

하지만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도입과 결말에 비해 사건은 다소 약화됐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하녀 ‘은이’(전도연 분)가 섹시하면서도 도발적인 유니폼을 입고 주인 남자 ‘훈’을 유혹하는 장면. 도입부는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자극적으로 다가오며 관객들로 하여금 절로 숨죽이게 만드는 묘한 힘이 느껴진다.

스타일은 강해졌지만 인물들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전작과는 달리 은이는 한없이 순진무구하기만하다. 하녀가 자신의 남편과 잠자리를 한 사실을 알고도 이를 묵인하는 주인집 여자와 그녀의 어머니는 악랄하지만 그들 역시 피해자라는 점에서 (영화적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 용인 가능한 수준이다. 훈 역시 말투나 행동이 독특하지만 자기 본위적인 인물일 뿐 남을 괴롭히는 악인은 아니다.

본능에 충실한, 그러면서도 순진한 은이는 복수를 꿈꾸지만 주인집에 막대한 피해를 가하기보다는 자멸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녀의 사랑은 치명적인 독(毒) 같지만 아파 가슴을 저리게 한다.

어쩌면 감독은 강자와 약자의 구도가 더욱 뚜렷해지고 물질만이 인정받는 현대사회를 비꼬며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발악할 수 있는 방법은 자멸의 길 뿐이라는 씁쓸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배우 전도연은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답게 절정의 연기를 펼친다. 노출신도 마다하지 않는 연기 열정과 함께 무덤덤하면서도 도발적인 매력으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감독이 “적은 분량에도 기꺼이 출연을 승낙해줬다”며 여러 차례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한 이정재는 존재감만으로도 영화에 힘을 실어준다.

중견 여배우 윤여정은 늙은 하녀 ‘병식’ 역을 맡아 하녀근성에 빠진 기성세대를 대변한다. 주인집 여자 ‘해라’ 역의 서우는 신인배우임에도 강한 눈빛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하녀’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와 함께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수상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기도. 오는 13일 국내 개봉.

현화영 young@j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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