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만 해도 한 시즌에 유행하는 패션은 몇몇 아이템으로 제한됐다. 예를 들면 펜슬 스커트(무릎 길이의 타이트한 일자형 스커트)나 민소매 블라우스 등 특정 아이템이 한 시즌의 대표적 패션 스타일로 떠올랐다. 따라서 그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거나 어울리지 않는 소비자는 유행을 따르고 싶어도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일례로 요즘 니먼 마커스(미국의 고급 백화점 체인)의 웹사이트는 각 시즌의 대표적 스타일에 치중하는 대신 소비자의 관심을 끌 만한 모든 스타일을 동시에 제시한다. 고객들은 핼스턴의 헤리티지 라인에서 나온 저지 드레이프 드레스와 에르베 레제의 몸에 딱 붙는 ‘밴디지’(몸에 붕대를 두르듯 띠를 이용한 패션) 미니드레스를 클릭해 살펴본다.

그러고 나서 아킬라노 리몬디의 장식이 많고 여성스러운 기성복과 단순미를 강조한 질 샌더의 미니멀리즘 아이템을 고른다. 소수의 디자이너와 패션 잡지 편집자들이 그 시즌에 유행할 스커트의 길이와 실루엣을 결정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 대신 자유시장의 특성에 맞게 소비자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가 왔다.

시즌 구분이 없는 패션은 패션업계의 민주화 과정에서 나타난 최신 경향이다. 이런 진화는 H&M, 톱숍 등의 패스트 패션(수시로 바뀌는 유행에 따라 재빨리 디자인을 바꿔 내놓는 패션 경향)을 낳았다.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부터 영국 패션 모델 케이트 모스까지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고가와 저가 브랜드의 혼합 경향도 여기서 비롯됐다.

소비자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신의 개인적 스타일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대중성을 중시하는 패션잡지 엘르가 지난해 상류층을 겨냥한 잡지 보그의 광고 수주를 사상 처음으로 앞지르게 된 이유다. 다이앤 퍼넷과 타비 등 패션 블로거들이 보그의 편집장 애나 윈투어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패션 전문기자 수지 멘케스 등 패션계의 거물들만큼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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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뉴스위크 한국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