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달 꼬박 일하고도 800만원...제작부는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쳐"

지난달 말 자신의 방에서 생활고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사망한 시나리오 작가 고(故) 최고은 작가의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동정여론과 함께 국내 영화산업의 부당한 고용구조에 대한 지적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8일 한겨레신문이 고 최고은 작가의 죽음을 최초 보도한 가운데, 같은날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영화노조)'은 성명을 발표했다.

영화노조는 성명서에서 "(최 작가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 이웃에게 음식을 부탁하는 쪽지였다니 말문이 막히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누기 어려울 지경"이라면서 "고인의 죽음 뒤에는 창작자의 재능과 노력을 착취하고, 단지 이윤창출의 도구로만 쓰려하는 잔인한 대중문화산업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며 개탄해 마지 않았다.

이날 오후 6시께 한 온라인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최고은 작가의 같은 과 학교 후배'라고 밝힌 이가 '그 동안 정말 말하고 싶었다. 영화 제작사의 횡포'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필명이 Fines인 이 후배는 "영화계에서 느낀 서러움과 화가 한꺼번에 터진다"면서 영화 제작사와 투자사의 횡포를 자세하게 기술했다.

그는 "자신의 지인 A가 겪은 일"이라며 "A는 지난해 미남 주인공이 출연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의 기술 스태프로 일했다. 당초 3개월에 800만원을 받기로 했지만 6달이 넘게 밤을 새며 일하고도 초과수당은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영화의 지난해 관객수는 600만명이 넘어섰고 제작사는 100억원 이상의 수익이 났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 하지만 최 작가의 후배는 "참지 못한 스태프들이 제작사에 계약 기간연장과 추가 수당에 대해 요구했지만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둬라. 다른 애들 뽑아서 돈을 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면서 "행여 제작사 눈 밖에 나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을까 염려 때문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800만원이라는 돈도 기술 스태프일 경우 많이 받는 것이지, 연출부나 제작부는 그 절반 수준도 받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고인에 대한 사망원인 또한 개인적인 문제 외에 사회의 구조적인 책임도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열심히 써도 캐스팅과 투자가 확정되고 촬영이 시작될 때까지 제작사로부터 돈을 받기 어렵다"면서 "돈을 언제 받는다는 기약도 없다"고 밝혔다.

영화노조의 주장 또한 같은 맥락이다. 노조 측은 열악한 영화제작 환경에 대해 "영화 스태프들의 2000년도 연평균 소득은 337만원, 10년이 지난 2009년도 연평균 소득은 623만원으로 조사됐다. 월급으로 치면 52만원이 채 되지 않는 액수로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영화 스태프들의 반복되는 실업기간 동안 실업 부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요구를 수없이 해왔지만 지금까지 집행된 영화발전기금의 몇 %나 이런 목적에 쓰였는지 답답하기만 할 뿐"이라고 전했다.

이렇듯 영화를 비롯한 예술업계 종사자들의 부당한 수익구조에 대한 문제들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배우와 감독들을 비롯한 사회 문화 각층 인사들은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자조 섞인 추모글들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배우 엄지원은 "부족한 재능으로 재능보다 큰 운으로 밥걱정 없이 사는 내가 참으로 초라해지는 밤"이라고 트위터에 올렸고, 소설가 공지영은 "이 사회에 안전망이 없음에 절망한다"고 한탄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이번 기회에 영화인들이 나서 이 문제를 사회적 공론화 좀 했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시인과 결혼한 고민정 KBS 아나운서는 "최고은 작가의 죽음. 마치 결혼 전 옥탑방에 살던, 지금은 내 동반자가 된 이 사람이 눈을 감은 것만 같아 자꾸 가슴이 아파온다"고 슬퍼했다.

고 최고은 작가는 지난달 29일 경기 안양 석수동의 월셋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신고를 접수한 만안경찰서 측은 고인이 췌장염과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앏던중 며칠째 음식을 섭취하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인은 사망 전 자신의 문 앞에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고 쪽지를 붙여 놓았던 것으로 밝혀져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물론 굶어서 죽을 정도로 힘든데 고인은 왜 주변 사람들이나 세상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꼭 영화라는 힘든 길을 가야 했을까하는 아쉬운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

'가난한 예술가'라는 말이 마치 관용어처럼 사용되는 이 사회에서, 예술을 추구하는 이들이 허리 펴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인지 많은 이들이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문화나 예술은 인간과 사회를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JTN뉴스 현화영 기자 blackmania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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