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초리' 박광우 감독. ⓒJTN NEWS

'회초리' 박광우 감독과의 만남

"돌아올 回 , 처음 初 , 이치 理" (나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이치의 나무)

2002년도 박광우 감독은 '강아지 죽는다'라는 영화를 만들어 놓고 배급사를 만나지 못해 영화계에 대한 원망과 울분이 가득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고향에 광한루가 있는 남원에 갔다가 우연히 학당을 구경하게 된다. 문득 그곳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사람의 신호등'이다. 삶이란 것이 가야할 때, 멈춰야 할 때가 분명히 있듯이 언젠가 밝혀질 파란불을 맞이하기 위해선 멈춰서 기다리는 자체치유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시작된 시나리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박광우감독은 한국청소년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수많은 단편영화제에서 주목받으면 영화계 '천재감독'이라는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회초리'의 시작과 끝의 여정은 8년이란 세월을 집어 삼켰다. 2류 혹은 3류라고 일컫는 감독은 2류 혹은 3류의 제작자를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박광우 감독은 4번의 아픔을 겪고 다섯 번째 만에 지금의 영화사를 만나게 됐다. 그동안 지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월세가 밀려 집주인에게 쫓겨나기를 여러 번. 단 돈 천원이 없어서 영화사에 걸어간 적도 있을 만큼 처절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했고 자신의 무능함을 책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견뎌야 했다.

8년 이란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는 건 시나리오 100고를 훌쩍 넘긴 너덜너덜해진 원고가 증명해준다. 수정과 수정, 완성에 완성을 거듭한 과정은 만족감을 높이기 위한 집착을 넘어서 굳은살 베긴 가슴에 수많은 회초리를 맞으며 견뎌낸 결과물인 것이다. 8년이란 시간동안 남녀 주인공은 수없이 바뀌었고 그 기다림의 인연 끝에 안내상을 만날 수 있었다.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과 '수상한 삼형제'에서 아줌마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배우 안내상은 '회초리' 촬영 당시 '성균관 스캔들'을 동시에 촬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회초리'의 촬영장 분위기가 좋아서 촬영장소를 떠날 때마다 칭얼댈 정도로 마음을 다해 주인공 역할을 해냈다고.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빵꾸똥꾸' 신드롬을 일으킨 아역배우 진지희는 '한국의 다코타 패닝'이라고 불려질 만큼 신들린 연기를 펼쳐냈고 진지희의 부모님조차 촬영장에서 주요 스태프로 참여할 정도로 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때늦은 장마로 촬영이 지연되고 벌들의 공격에 많은 스태프들이 곤욕을 치렀지만 신기하게도 배우들은 벌에 쏘이지 않았다고.

전직 권투선수이자 아시안게임 금메달 선수였던 '두열'(안내상)은 건달들과의 시비에서 사고를 당해 자신에게 아이가 있는지도 모른 채 식물인간으로 몇 해를 보낸다. 그 사이 아내는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고 두열은 희망없는 망나니로 살다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켜 학당에 들어오게 된다. 문제가 많은 사람들을 교육해야하는 꼬마 훈장 '송이'(진지희)는 막장인생의 불량 아빠를 보며 매우 실망을 하지만 티격태격 하면서도 아빠를 걱정하는 송이의 눈가는 항상 촉촉히 젖어 있다. 마음으로 눈빛과 혼으로 연기를 불사르는 안내상과 이 시대 최고의 아역배우 진지희의 오열 연기는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감동을 줄 것이다.

8년 만에 개봉을 앞두고 있는 박광우 감독은 심정이 남다르다. 온갖 수모와 아픔을 견뎌야했던 시간들. 아마 이렇게 오랜 세월을 견뎌야 하는 걸 처음부터 알았다면 오래전에 포기했을 거라고 감독은 말한다. 바늘꽃 같은 희망이라는 놈 때문에 하루하루를 견뎌낼 수 있었고 친동생 박형우와 함께 했기에 긴 여정을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야말로 가족이라는 힘을 바탕으로 한 형제애가 더욱 발휘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 시대 흔들리는 가족의 정체성이 '회초리'라는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깨우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진정 부모의 스승은 아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 스스로 종아리를 걷고 꼬마 훈장의 회초리를 맞아보면 어떨까?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부모로서의 부족함 앞에 꼬마 훈장의 회초리는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회초리'는 오는 5월19일 개봉된다.


박준희 가수 겸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가수 박준희는...

1990년대초 '눈 감아봐도'로 데뷔, 그룹 콜라 활동. 최근 하이틴 뮤지컬 '아이돌' 음악감독으로 참여했으며,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 또라이들'이라는 저서를 발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