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민들이 만드는 연극 ‘효녀 중랑’…11월7일 중랑구청 대강당서 공연

무대 위, 조그만 소통(疏通)의 창구를 꿈꾸다!

바쁜 도시생활, 이웃은커녕 자신의 가족조차 제대로 돌보기 어려운 요즘. 연극을 통해 이웃사촌을 만드는 아파트 주민들이 있다고 해서 지난 10월30일 서울 중랑구청을 찾았다.

오후 7시30분을 훌쩍 넘긴 시각. 모두들 학교와 일터에서 돌아오는 시간이었지만 중랑구청 대회의실의 불은 아직 환하게 켜져 있었다.



75세 고령의 어르신에서부터 초등학생 꼬마들까지 ‘안녕하세요?’란 로고가 새겨진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연극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

이들이 준비하고 있는 연극은 중랑구 지역의 구전설화를 모티브로 한 창작극 ‘효녀 중랑’이다. 오는 7일 중랑구청 대강당에서 막이 오를 이 연극을 위해 연출가 경상현 씨를 비롯해 정혜승 예술감독 등 스태프들과 21명의 배우들은 극도의 집중력을 보여주며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었다.

‘효녀 중랑’ 연습이 시작된 것은 약 5개월 전인 지난 6월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교육문화예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생활문화공동체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중랑구 상봉동 신내아파트 12단지 주민들이 선정되면서부터다.


△ 연출가 경상현 씨.

지역 주민들이 문화 활동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기회를 갖고 이웃끼리 유대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시작된 이 시범사업에 큰 매력을 느낀 경상현 씨는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는 중랑연극협화와 극단 어우름간의 컨소시엄을 만들어 이 연극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기획 각색 연출 등 1인 다역을 소화해내며 ‘효녀 중랑’의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었다. 문화로 하나 된 이웃끼리 만나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인사를 먼저 건네자는 취지에서 프로젝트명을 '안녕하세요?'로 지은 것 또한 그의 아이디어였다.

6대1의 높은 경쟁률과 3차에 걸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상봉동 주민들이 최종 선정되기까지 갖은 노고에도 처음부터 주민의 호응도가 높지는 않았다고. 배우를 뽑는 첫 오디션이 있던 날 단 13명의 주민들만이 참가, 결국 경상현 씨는 아파트 단지를 돌며 직접 길거리 캐스팅에 나서야 했단다.



연극과 영화가 뭔지 구분조차 하지 못했다는 할머니에서 마냥 뛰어놀기만을 좋아하는 어린이들까지. 그렇게 선발된 21명의 주민 배우들은 ‘연극이란 무엇인가’란 원론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 연극을 향한 머나먼(?) 여정에 돌입했다.

매주 5일 이상 5~6시간 동안 늦은 시각까지 계속되는 강행군에도 주민들의 출석률은 90% 이상. 특히 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커튼콜 연습에 한창인 주민들의 눈은 피곤한 기색이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롱초롱 빛났다.

5개월간 동고동락해온 주민들은 이제 이웃을 넘어 가족과도 같은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자신의 연습이 없는 날에도 이웃을 응원하기 위해 보리차에 감자며 고구마를 삶아와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연극이란 새로운 세계를 알게 하고 도전하게 해준 경상현 씨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주민들은 얼마전 명예주민등록증을 손수 만들어 전달했다.

경상현 씨는 명예주민등록증을 높이 들어 보이며 “앞으로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계속 연극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도와드리고 싶다”며 기쁜 마음을 전했다.

올해 75세의 최성옥 할머니는 “70평생을 살아오면서 가슴속에 꽃봉오리가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꽃이 ‘효녀 중랑’이란 연극을 통해 활짝 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고. 이제는 연습실에 오는 게 매일 출근하는 기분이라는 할머니는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효녀 중랑’은 ‘중랑’이란 지역명의 토대가 된 효(孝) 이야기다. 몸이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중랑’이란 청년으로 남장을 하고 부역에 나서는 ‘분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원전이 가지는 단순한 이야기구조를 넘어 주민들이 직접 창작에 참여, 인형극 사물놀이 등 상상력이 돋보이는 극중극들이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멀리 강원도에 사는 친척들까지 공연을 보러오라고 불렀다”며 부푼 가슴을 안고 무대에 오를 그날을 기다리는 한 주민의 모습에서 이 시대 문화가 가진 힘, 그리고 문화를 꿈꾸는 사람들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상봉동 주민들이 꾸미는 연극 ‘효녀 중랑’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해본다.


JTN 현화영 기자 / 사진 유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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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주민들이 만드는 연극 '효녀중랑' 연습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