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수십 명의 농업인들이 서울의 한 지하철역을 습격해 점거하는 사상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위 사진이 바로 사건 당시의 모습을 촬영한 것입니다.

승객들이 타고 있어야 할 전동차 안이 마치 복잡한 시장처럼 어수선합니다. 잘 익은 고추장과 된장이 진열되어 있고, 그 앞의 사람은 이를 사려는 듯 돈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 뒤의 사람들은 삼삼오오 몰려 물건을 구경하고, 손에 종이컵을 하나씩 들고 시식을 하고 있습니다.

승객용 손잡이와 좌석, 그리고 출입문까지 영락없는 전동칸의 모습인데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농업인들이 어떻게 전동차를 점거하고 장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사진을 보고 이미 눈치를 채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위 사진들은 바로 서울 강남구 청담역에서 열린 농축산물 직거래장터의 모습을 담은 것입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충청북도 지역 9개 시·군의 농업인들입니다. 충북도가 서울도시철도공사와 협약을 체결하고 서울 강남구 청담역 열차에서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도내 농축산물 직거래장터를 열기로 한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열차가 운행하는 철로를 막고서 어떻게 장사를 할 수 있는지', '판매하는 농축산물은 어떻게 실었는지', '지하철역을 돌면서 판매하는 것인지' 등 궁금하신 점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우선 예비선로에 서 있는 8량짜리 전동차를 장터로 꾸며 운영하는 것으로 이동하는 지하철 구내에서 판매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판매 농축산물은 의정부 도봉차량기지에서 싣고 진열한 뒤 7호선 청담역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이날 직거래장터에는 도내 9개시군 16개 단체에서 신청한 75개 품목이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장터에 어떤 농축산물이 판매되었는지 함께 살펴보실까요?


축산물은 도에서 운영하고 있는 친환경축산클러스터사업단의 한우, 무항생제돼지, 닭고기가 육품정육우클러 스터사업단의 육우가 판매되었습니다. 모두 엄격한 품질관리를 하는 제품들로 매우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축산물을 판매하고 있는 전동칸에 올라 선 한 승객은 "지하철이 왜 출발을 하지 않고 서 있나했네"라고 말하며 황급히 내리는 재미있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8량의 전동칸 중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던 곳은 한과와 과일을 판매하는 곳이었습니다. 대부분 중장년층의 농업인들이 농축산물을 팔고 있었으나 그 속에서 유달리 젊은 판매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목청으로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던 정구식(29)였습니다. 그가 만든 한과는 사과를 재료로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에게 "한과가 인기가 많은 것 같다"고 말을 건네 봤습니다. 정씨는 “원래 설날이나 추석 때에나 팔던 것이었는데 요즘에 인기가 매우 높아져서 명절 때 외에도 만들어서 팔고 있다”며 최근 한과의 인기도를 전했습니다.


'사과의 고장' 충주의 명품 사과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상자에 사과를 담아서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중 비닐 봉투에 담아 판매하는 농업인도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옆 칸에서는 오미자차와 농축액, 효소액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미자는 기관지에도 좋은 농산물이지요.

오미자 가공품을 판매하는 이건분(56)씨에게 "장사가 잘 되나"고 말을 꺼내자 "농업인들이 직접 파는 농산물이 비싸다는 소문이 나서 조금 서운하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이어 “방금 전에도 어떤 할머니께서 5천 원 밖에 없다고 해서 1만 원에 파는 상품을 반값에 드리기도 했다"며 "여기 오시는 분들이 비싸다는 생각부터 하시는데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이씨는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꼬집었습니다. "사람들은 친환경을 좋아하지만 겉으로 봤을 때 깨끗하고 예쁜 것을 선호한다. 만약 열무를 산다고 해도 희고 잘 포장되어 있는 것을 산다. 그런데 그런 것일수록 친환경에서 먼 경우가 다반사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현장에서는 젊은 손님들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출퇴근 길에 반찬과 간식거리를 많이 구매한다는 윤세경(28세)씨는 "혼자서 자취를 하는데 집이 신림동이지만 회사가 삼성역이라 청담역 장터를 이용하게 됐다"며 "가격도 저렴하고 밥을 할 때 반찬을 마련하기 좋은 곳"이라는 추천의 말을 남겼습니다.

간혹 중년 남성들도 눈에 띄었는데, 손에 한아름 장을 본 홍순만(55)씨는 "지하철역에 장터가 선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들렀다"며 "감, 사과, 배 등 과일을 좋아해서 많이 샀다"고 전했습니다.

홍씨는 이어 "내가 서울 출신이라 시골 장터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 즐겨 찾고 있다"며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것을 좋아해서 장터를 찾는데, 이곳 지하철 장터도 그런 분위기와 너무 비슷해서 좋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도시철도공사는 열차장터에 대한 서울지역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아 매월 둘째, 넷째주 화요일에서 목요일까지만 열었던 장터를 매주로 확대 운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기성 세대에게는 옛 추억을 되살리게 해 주며, 농업인들에게는 행복을 가져다 주는 지하철역 직거래장터. 지하철역 한 곳에 머물지 말고 여건이 되는 여러 곳에서 열린다면 모두 더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글/사진 : 농림수산식품부 대학생 기자 김하진, 주부 블로거 송덕성]
[출처 : 새농이의 농수산식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