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예고한 책 ‘시인을 찾아서’는 ‘힘이 센 구간(舊刊)’이다. 엔간한 문학 신간보다 많이 팔리고, 그만큼 영향력도 크다. 언제 어느 때라도 교보문고에 수북하게 쌓인 모습이 보인다. 예전 MBC 오락프로 ‘!느낌표’의 점지를 받았던 덕이리라.

당시에는 한두 번 그 프로에 소개되면 바로 상업적 대박으로 이어졌지만, 책 내용까지 좋았던 경우라면 전우익의 산문집 ‘혼자서 잘 살문 무슨 재민겨’와 함께 신경림의 이 책이 떠오른다.‘시인을 찾아서’는 문장이 좋다. 시인이 뛰어난 산문을 남기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바로 그런 경우다.

책에 소개된 시인 22명의 대표작과 함께 생애가 잘 녹아있는데, 표면상으로는 기행문이다. 신경림이 본디 문단의 중진 시인이라서인지 사람 사이에 얽힌 일화가 글 사이에 등장하는데, 해당 시인의 삶과 시의 행간을 되새기기에 좋다. 향토의 정서를 정갈한 모던 시로 만들어낸 부여 출신의 시인 박용래(1925~80) 이야기는 배꼽을 잡게 한다.

일제시대 꽃미남 시인 백석

소설가 이문구가 박용래를 모시고 술자리를 만들었다. 합석한 사람은 충북 옥천 출신의 한 시인인데, 둘 사이에 정지용 이야기가 잠시 화제였다. “지용의 고향, 옥천 참 좋지!” 이문구의 이 말을 눈치 없고 좀 모자랐던 친구가 하필이면 이렇게 받았다. “지용이 옥천 사람이라고?”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박용래가 폭발했다. 술잔을 벽에 내던지면서 바로 밥상을 엎었다. “문구야, 너 이놈아. 어찌 이런 놈을 친구라고 따라다녀?” 명색이 시인이라는 사람이 지용의 고향도 몰랐느냐는 질타였다. 이문구 자신도 다른 기회에 박용래에게 꼼짝 못한 채 당해야 했다.

“선생님은 호서(충남)의 대표적인 시인입니다.”

“뭐야? 이런 싸가지 없는 놈 봤나? 한국의 대표 시인이라고 해도 시원치 않은 판에.” 무심코 던진 이문구의 면찬(面讚)이 폭탄으로 되돌아온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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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뉴스위크 한국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