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혁명이 던져준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서구 지식인들에게) 그때까지 환상에 불과했던 무엇인가가, 즉 성공적인 반자본주의 혁명이 갑자기 현실로 다가왔다.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는 이제 한가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목숨을 담보로 한 러시안 룰렛으로 바뀌었다. …지식인에게는 혁명의 낭만이 언제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러시아혁명이 그 흡인력을 두 배로 키웠다. …혁명은 인텔리겐치아의 아편이었다.”(‘지식인과 자본주의’ 283~284쪽)

1917년 러시아혁명이 한반도 근·현대사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준 충격 역시 어마어마했다. 2년 뒤의 3·1운동도 그 영향권이지만,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창당(25년), 민족주의자·사회주의자의 좌우 합작을 뜻하는 ‘색 새끼’로 불렸던 신간회 창립(27년)에도 마찬가지다. 서구 지식사회에 러시아혁명이라는 변수는 더욱 컸다.

19세기만 해도 일부 급진파가 반자본주의를 천명했다면, 20세기 이후 지식인사회는 자칭 타칭 공산주의자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다수파로 자리 잡기까지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기이한 노릇이다. 거대한 실패로 종료된 공산주의 실험, 70여 년간 지속되는 과정에 사회·경제적 성취는 막상 지리멸렬했던 볼셰비키의 묻지마혁명이 초기에 왜 그리 매력적이었을까?

더구나 러시아는 당시 정치 후진국이 아니던가! ‘지식인과 자본주의’에 따르면 여기에 지식인의 구조적인 맹점이 자리잡고 있다. 자본주의란 돈으로 얽혀 돌아가며, 꼴사납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보는 그들 눈에 러시아혁명은 신화였다. 미국독립혁명이 민주주의의 봉화였다면, 소비에트체제는 유토피아로의 초대장이었다.

러시아의 현실보다 반자본주의 혁명 자체가 굿 뉴스였다. 냉정한 정치공학 대신 도덕성·대의명분에 열광하느라 지식인들은 오래 눈이 먼 상태로 움직였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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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뉴스위크 한국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