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묻게 된다. 즐겁지도 않은데 웃거나 합당하지 않는 일로 우기거나 화를 내고, 아무 느낌도 없는 석양을 바라보며 시를 쓰고, 마음에 없는 사람과 결혼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도 밥을 먹는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인생 수업'이라는 책에 죽음에 대한 교훈을 적어 놓았다.

'아직 죽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지 말라', 즉 죽음을 경험했던 사람처럼 살면 그 삶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하나의 기회이며, 아름다움이고, 놀이이다. 이것을 감상하고 누리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린 것이며 세상이 보여 주는 최상의 것을 배우는 일은 우리 자신의 몫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내일이 먼저 올지 내생이 먼저 올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말과 행동이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마지막 말과 행동이 될지도 모른다. 단 한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죽음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나 많은 역할들로부터 많은 것을 얻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맹목적인 희생은 후회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자신들이 가정의 '관리자'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항상 부모와 형제들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책임을 떠맡고, 갈등을 해결해야 했으며, 식구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직장을 구하는 것을 돕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 짐스러운 역할이 당신 자신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놓아버린다. 그 순간 여전히 당신은 좋은 사람이지만, 더 이상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지는 않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풀 수 없는 관계들이 있다. 꼭 풀어야만 하는 게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은 억지로 융화를 시킬 필요가 없다. 그런 불협화음을 많은  사람들이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한다. 만약에 우리도 그런 문제들을 떠맡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버리지 못한다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자신이 좋은 역할을 맡고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사는 한은 다른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것까지도 다 짊어지게 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삶의 또 다른 부분들을 빼앗는 것이며 자신만의 욕심으로 착한역할을 도맡아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책임감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가족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똑같을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모두 인정할 때 비로소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역할을 잃는 것이 슬플지 몰라도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가까워지는 편이 훨씬 낫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를 찾아온 한 여성은 18살 된 아들 걱정에 머리가 복잡해 고민을 털어놓는다.

"매일 저녁 집에 돌아오면 아들은 여자 친구에게서 받은 요란스러운 티셔츠를 입고 식탁 앞에 앉아 있었어요. 바랜 티셔츠가 맘에 들지 않아 심기가 좋지 않았는데 매일 같이 그 티셔츠를 입고 다녔죠. 남들의 시선도 신경 쓰였고 맘에 들지 않는 패거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조차 마땅치 않았어요. 매일 저녁 저는 아들에게 옷차림은 물론이고 거슬리는 모든 것에 꼬투리를 잡아 잔소리를 했어요. 저는 늘 그런 식이었죠.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강연을 듣고 삶과 작별하는 연습을 떠올리게 됐어요. '만일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내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들과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들이 죽는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보자 ...' 아들과 그녀의 관계에 대해 엄청난 상실감과 후회의 감정을 갖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속으로 계속 이렇게 끔찍한 시나리오를 쓰면서 아들의 장례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어요. 나는 아들에게 정장을 입혀서 묻지는 않을 거예요. 정장을 입는 타입의 아이가 아니거든요. 그 애가 그토록 좋아하던 지저분한 티셔츠를 입혀서 묻을 거예요. 그렇게 아들의 삶을 기리게 될 거예요. 아들이 죽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애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겠구나. 싶었던 거죠.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런 생각을 왜 못했는지 후회를 하면서 말이죠.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서 아들에게 마음대로 티셔츠를 입어도 좋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아들에게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저도 행복해졌어요."(인생 수업의 본문)
                                                               
우리는 죽음이라는 걸 경험하거나 혹은 죽음 가까이에 갔을 때 삶에 대한 의식을 바꾸기 시작한다. 암을 이겨낸 사람들이나 혹은 사고로 생사에 갈림길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삶은 누가 봐도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신의 경고를 받지 않고서는 웬만해서 죽음이 자신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다. 매일 매일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산다면 오늘 하루를 평화롭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박준희 가수 겸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가수 박준희는...

1990년대초 '눈 감아봐도'로 데뷔, 그룹 콜라 활동. 현재 추계예술대학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 또라이들'이라는 저서를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