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의 다섯 주역들. 좌로부터 고창석 신승환 장근석 정진영 홍기선 감독 [사진=JTN]

홍기선 감독 신작 ‘이태원 살인사건’ 언론시사회…“사회에 대한 통찰 돋보여”

목격자만 있고 범인은 없다.
그리고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오! 꿈의나라’,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등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홍기선 감독이 17년만에 신작을 들고 충무로에 컴백했다. 31일 오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제작 선필름/영화사 수박)의 언론시사회 및 간담회.

지난 1997년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가게에서 일어난 미해결 살인사건을 그린 이 영화는 요즘 나오는 영화들처럼 세련된 필체는 아니지만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정진영 장근석 오광록 신승환 고창석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해 감독과 뜻을 함께 했다.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몸에 칼을 9군데나 맞고 쓰러져간 한 남자 대학생이 있다. 누군가의 연락을 받았다는 햄버거 가게 측은 사건 다음날 범행현장을 깨끗이 정리하고 남은 건 몇 장의 사진과 18세의 용의자 2명 '피어슨'(장근석 분)과 '알렉스'(신승환 분) 뿐이다.


△ 박대식 검사 역의 배우 정진영 [사진=JTN]

사건을 담당한 '박대식' 검사(정진영 분)는 “우리 둘중 범인은 있지만 자신은 목격자일 뿐”이라며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피어슨과 알렉스중 피어슨의 손을 들어준다. 그 반대편에서는 알렉스의 아버지(고창석 분)와 김 변호사(오광록 분)가 알렉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박대식 검사의 노력에 힘입어 법원은 1심에서 알렉스를 범인으로 지목, 알렉스에게 무기징역을 피어슨에게 징역 1년(장기 1년6개월)을 선고한다. 하지만 이듬해 알렉스는 항소심에서 승소해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난다.

자신이 왜 죽어야하는지 상대가 누구인지 아무 것도 모른 채 죽어간 남자 대학생 조중필. 두 사람중 한 사람이 범인임에는 확실하지만 그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받은 사람은 없다. 이 억울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은 법이란 제도가 갖는 부조리적 한계이며 정의보다 물질이 우선인 사회의 한 단면이다. 홍기선 감독은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다양한 몽타주를 통해 과거 혹은 현재의 우리 사회를 조롱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 용의자 피어슨 역의 배우 장근석 [사진=JTN]

전작들을 통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 사건들을 소재로 삼아온 홍 감독은 ‘이태원 살인사건’에 대해 “미제의 사건이라 (영화로) 풀어내기 힘들었다”면서 “영화에서 누가 진짜 범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은 검사 변호사 목격자 증인 나아가 모두의 책임”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그는 “영화의 배경이 이태원의 한 햄버거가게라는 점에 주목했다”며 “이 곳은 한.미간 특수한 문화적 정체성이 부딪히는 상징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가 멕시코계, 어머니가 한국계인 피어슨이나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성장한 알렉스 모두 어떤 사회에도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인생들일 뿐이다. 결국 그런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조중필이라는 청년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배우 정진영은 홍 감독에 대한 깊은 신뢰를 드러내며 “이 영화는 할리우드 스릴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스펙타클하고 드라마틱한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 그는 “‘이태원 살인사건’은 감독님의 연출스타일 그대로 당시의 사건을 차분히 재현, 12년전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막걸리 스릴러’라 할 수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 홍기선 감독이 막걸리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날 공개해 간담회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처음 악역에 도전한 장근석은 “영화가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될 줄 몰랐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작은 극장에서 관객들 조금 모셔 놓고 조촐히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그는 “홍기선 감독님, 그리고 여러 존경하는 선배님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어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무대인사에서는 지난 7월 마약류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된 오광록에 대해 “선배님이 보고 싶다. 다시 함께 현장에서 뵙고 싶다”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JTN 현화영 기자 / 사진 이충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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