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문열이 신작 ‘불멸’을 들고 돌아왔다. 그는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초한지’ 이후 1년 7개월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불멸’은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안중근 의사의 일생을 다룬 장편소설. 이문열이 조선일보에 연재한 것을 민음사가 1, 2권으로 펴냈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10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다음은 작가 이문열과의 일문일답.

- 작품 소개를 간단히 한다면.

▲ ‘불멸’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전기소설이다. 전기소설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로맹 롤랑(romain rolland)처럼 최소한의 원형만 특징으로 삼아 완전히 소설화하는 형태가 있고, 최대한 사실에 근거해 쓰는 형태가 있다. 안중근 의사는 시간적으로 근접해 있는 분이어서 함부로 주관화하고 소설화하기 불편했다. 그래서 후자의 방법을 택했다.

- 안중근 의사를 소설적 인물로 표현하면서 가장 심각하게 느낀 봉인(封印)은 무엇인가.

▲ 가장 심각한 것은 일제의 봉인이었다. 안 의사의 시신 자체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상징이라고 할 만하다. 일본 사람들의 기록하는 습관을 봤을 때는 분명히 어딘가 있을 터. 그러나 공동묘지터에는 아파트가 개발중이라 앞으로는 찾으려고 노력해볼 수도 없는 현실이다.

- 소설에 착수하기 전 자료를 취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 소설적 느낌을 받아 눈여겨보는 인물이 몇 명 있다. 안중근 의사는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구체적으로 2005년 ‘영웅’이라는 뮤지컬의 대본 의뢰가 있었다. 사전조사를 했는데 충분히 문학적 인물이기는 하지만 뮤지컬로 올릴 만한 레퍼토리를 느끼지 못해 사양했다. 2008년에 다시 조선일보에서 연재 의뢰를 받았고, 뮤지컬로는 자신이 없었지만 찬찬히 산문으로 풀어간다면 해볼만 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3년만인데도 70년대 이후의 새로운 자료가 굉장히 많이 발견됐다. 오히려 자료가 너무 많아 충돌이 일어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이야깃거리를 찾는 데 급급했다면 나중에는 충돌하는 자료 중 어떤 것을 뺄까 고민하게 됐다. 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으로 무시했던 1909년 부근의 1차 자료를 나중에 다시 봤는데, 이 자료들을 무턱대고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초기자료에 집착했고 혼란스러웠다.

- '불멸' 작품에 녹여 쓴 안 의사는 어떤 캐릭터인가.

▲ 제목을 정하지 못하면 글이 잘 써지지 않는 편이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제목을 먼저 정하면 많은 부분 작품을 쓴 느낌이 든다. 안중근은 의사이자 테러리스트, 또 장군이었다. 그리고 안중근 스스로는 영웅으로 불리길 바랐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기에는 미흡하다고 생각해 추상적인 개념으로 지은 것이 ‘불멸’이다.

안 의사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바친 것은 조국과 동족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것은 실존의 한 형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불멸의 가치에 자신을 던져 불멸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것을 융화시키려 했다.

- 작가가 글을 쓰는 과정을 피를 말리는 작업에 비유하기도 한다. 작업하면서 어떤 고통이 있었나.

▲ 글을 쓰는 것이 피를 말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감이라는 실제적인 고민과 정신적 압박이 있지만 그만큼 자신을 위안하는 면이 있기도 하다. 글쓰기는 삶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삶의 위로이자 빛이다. 그것의 균형을 이뤄나가는 게 글쓰기다.

- 조선일보에 연재한 것과 비교해 개작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 크게는 하지 않았고 10% 정도를 고치거나 첨삭했다. 전체적 탈태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원형을 깨버리는 것이 싫어서 불가피하게 고쳐야 할 부분과 첨가해야 할 부분만 교정했다.

- 안중근의 영웅적인 모습과 인간적인 모습이 있다. 두 부분을 어떻게 분배했나.

▲ 인간적인 모습이라 하면 로맨스나 사생활 등 우리들이 부딪치는 문제일 텐데 안중근의 삶을 쓰면서 이 분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웠다. 가톨릭적으로도 설명이 안 될 만큼 순직한 분이기 때문이다. 30여 년 일생 중 15년을 부인과 살았고, 3남매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그가 쓴 400매의 자서록 중에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고작 10줄 안팎이다. 그를 우리 곁에 있는 듯한 어른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추상적이고 거창한 불멸의 영웅으로 이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 평소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나.

▲ 몰취미한 사람이라서 고상하게 책을 볼 때도 있지만 주로 술을 마신다. 요즘은 과음을 해서 자중하는 편이다.(웃음)

- 근래 자주 만나는 문인은 누구인가.

▲ 지난 10년 간 문인을 만난 적은 없다.

-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계획하고 있나.

▲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인데 불가피하게 정치와 관련돼 망설이고 있고, 또 하나는 기분상으로 썩 내키지 않는 이야기이다. 현재 어떤 것을 먼저 할지 그 순서를 고민중이다.

- 본인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 살아서 맨 마지막에 쓴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것은 옳은 대답이 아닌 것 같다. 모두 나의 정신적 자식이지만 ‘호모 엑세쿠탄스’는 사고로 죽은 자식 같은 애틋함이 있다. 그 애틋함은 다시 말하면 애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선물 받은 하루키의 ‘1Q84’를 보면서 이 책을 더 애도하게 되었다.

- 현 시대도 ‘시대의 불화’라고 생각하는가.

▲ 왕따 아닌가.(웃음)

- 2010년은 한일합방 100주년이자 안중근 서거 100주년이다. 시기에 맞춰 책을 출간한 이유가 있는가.

▲ 책 서문에 시의(時宜)라는 단어를 적었다. 3월26일이 안 의사의 서거 100주기다. 그 전에 필거해 순국 의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싶었다.

- 안중근 의사를 다룬 이 책에서 민족주의는 중요한 사상인가.

▲ 민족주의는 용도폐기된 개념이다. 그러나 안중근을 지금에 와서 돌아보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고,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멸이라는 제목 외에 ‘이 사람을 보라’라는 제목을 생각하기도 했다.


JTN 권선혜 기자 / 사진 유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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