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말' 대본집을 낸 노희경 작가. ⓒJTN뉴스 [사진=유승관 기자]

노희경 작가가 24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교보문고 본사 문화이벤트홀에서 드라마 ‘거짓말’ 대본집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1998년 방영된 ‘거짓말’은 우리나라 최초의 ‘마니아 드라마’로 평가받은 작품. 노희경 작가는 그동안 ‘거짓말’을 비롯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꽃보다 아름다워’, ‘굿바이 솔로’ 등의 드라마를 통해 따뜻한 인간애와 사랑을 보여줬다.

노희경 작가가 대본집을 출간한 것은 지난해 10월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의 대본집 출간 이후 두 번째. ‘그들이 사는 세상’은 출간 3개월 만에 1만 5천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출판을 담당한 ‘북로그컴퍼니’는 내년 3월 노희경 작가의 4부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단편집)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노희경 작가와의 일문일답.

- 12년 전 방영된 작품을 책으로 다시 만난 소감은 어떤가.

▲ 그때를 떠오르니 마음이 짠했다. ‘거짓말’을 쓸 때 몸무게가 32㎏까지 나갔다. 지금은 38㎏인데 굉장히 컨디션이 좋은 상태다. 캐릭터라든지 끈적끈적한 대사나 장면이라든지 정제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젊은 날이 아니면 언제 미쳐보겠나.

- ‘거짓말’은 드라마 폐인의 원조라 불릴 만큼 다수의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그 당시 PC통신을 통해 드라마 동호회가 형성되면서 인기를 끌었는데 어떤 기분이었나.

▲ 처음이라 신기했다. 그리고 별로 오래갈 것 같지 않았다. 12년이나 지속될지 몰랐다. 만나지는 못하지만 고맙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이 동호회에 가입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책에 실린 저자 사진도 동호회 분이 찍어준 것이다.

- 드라마 ‘거짓말’의 마지막 부분에 “그들도 모두 잊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 행복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책을 출간하게 된 것도 그 이유 때문인가.

▲ 사실 예전 사귀었던 사람의 이름은 잊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내가 쓴 드라마의 에피소드나 캐릭터는 잊지 못한다. 매순간 그것들을 기억해주고 스스로 독려해주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 시청률 저조에 대한 심정은?

▲ 속상하다. 그런데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자책하는 시간이 점차 빨라지는 것 같다. 많이 나오면 좋겠지만 상처는 받지 않는다. 마니아가 많다는데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웃음)

-  ‘거짓말’의 출연진과 친분을 나누는가.

▲ 배우와 작가의 관계다 보니 각자의 일이 있기 때문에 작품으로 친분을 나눌 수밖에 없다. 배종옥 씨나 주현 선생님 같은 경우는 아시다시피 드라마로 계속 만나고 있다.

- 기억에 남는 캐릭터나 배우는 누구인가.

▲ 배우들은 다 기억에 남는다. 캐릭터는 ‘거짓말’의 ‘성우’(배종옥)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인희’(나문희)나 ‘내가 사는 이유’의 ‘숙자’(나문희)가 생각난다. 주현 선생님 캐릭터도 좋고 대체로 어른들이 좋다. 젊은 친구 중에는 최근에 송혜교가 기억에 남는다.

- 아무래도 드라마는 영상예술이기 때문에 책은 또 다른 느낌일 것 같다. 걱정은 없었는가.

▲ 드라마는 화면을 위한 작업이다. 그동안 출판 제안을 받았지만 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다. 드라마에서 대본은 베이스일 뿐, TV 화면으로 보는 것과 많이 다르다. 한편으로 드라마가 잘 안 되면 ‘배우가 못해서 그랬지’ 하는 배포도 생겼다.

- 요즘 흔히 ‘막장 드라마’라고들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막장’이라는 말 자체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아파서 안 봤는데 요즘 일부러 공부 삼아 봤다. 보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서 나름대로 선한 면이 있는 것 같다. 내 드라마는 머리가 아프고 답답해 팬서비스가 모자라는 게 아닌가 싶다. 한편 순한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옅게 풀은 된장국 같은 드라마 말이다.

- 새 작업을 구상할 때 무엇을 가장 염두에 두는가.

▲ 새로운 소재를 만드는 것은 ‘무엇을 극복할 것이냐’ 하는 방법을 찾는 것과 같다. 그래서 드라마 모니터링을 할 때 연출자나 배우가 하는 말을 귓등으로 안 듣고 다 모은다. 어떤 면이 재미있고 신선했는지 장점을 되새기고, 호흡이 빨랐다면 앞으로 어떻게 조절할지 고민한다. 지난작품에 대한 반성이 첫 번째 소스다.

- 사극에 대한 관심은 없는지.

▲ 쓰고 싶다. 우선 제약이 없어서 편할 것 같다. 사람을 죽일 때도 산속에서 죽이면 되지 않나. 그런데 정말 공부를 많이 하고 시간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작품이다. 요즘 사극을 쓰는 여자 작가들이 많은데 반갑고 존경스럽다. 나도 나중에 나이 들면 5년 정도 칩거해 짧은 사극이라도 써보고 싶다. 조선시대 말이라든지 시대극의 정서라는 게 있는 것 같다. ‘객주’ 같은 작품도 너무 좋지 않은가.

- 멜로드라마를 쓸 때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삼는지.

▲ 연애할 때 이야기를 잔인하리만큼 우려먹는다. 그러면서 그때의 실수를 반성하기도 한다. 작가와 캐릭터가 분리되기는 힘들다.

- 최근 한국 드라마가 일본의 작품을 원작으로 각색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일본과 홍콩 등 아시아 작가들과 세미나를 2~3번 한 적이 있다. 그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것이 한국 작가다. 예전만 해도 한국 드라마의 대다수가 창작물이었다. 점차 산업화되면서 지금은 각색하는 작품이 늘었다. 그들은 단순히 각색자의 역할에 불구하다. 어차피 각색도 원작이 10%며 나머지는 재창조해야 한다. 지어내지 않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다. 왜 일류가 없고 한류만 생겨났는지 한번쯤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 울며불며 간다. 작년에 처음으로 18㎞를 걸어봤다. 가기로 했으니까 갔다. 울기도 하고 욕도 하면서 목적했던 곳까지 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걱정을 하면 엔딩은 한다고 말한다. 그 믿음은 있다. 직장생활하면서 울고불고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

- ‘노희경표 드라마’란 무엇인가.

▲ (웃음)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마니아가 아닌 시청률을 높이고 싶었다. 그래서 ‘바보 같은 사랑’ 들어갈 때 할 때 이름을 ‘이경희’나 ‘노경희’로 하려고 했다. 지금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홍보에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방송에서는 흔히 그렇게 말한다. 만날 똑같이 들리기도 하고 기분 좋게 들리기도 한다.

-  작품 쓸 때 가장 어려운 점은?

▲ 생각이 안 나고 모를 때.

- 노 작가의 드라마를 통해 실제 연인이 탄생했다. ‘화려한 시절’의 공효진-류승범과 ‘그들이 사는 세상’의 송혜교-현빈 커플을 예상했었나.

▲ 당연히 따로따로 캐스팅했기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했다. 우선 재밌었다. 처음 만나 서로 소개하는 것을 봤으니 상견례 자리를 지켜본 셈이다. 들리는 풍문에 따르면 애인 있는 사람은 노희경 작품을 하면 안 된다는 얘기까지 있더라.

- 소설집이나 에세이를 쓸 의향은 없는가.

▲ 사실 산문과 시를 전공했다. 소설도 드라마 작품을 쓸 때 최선을 다했던 열정으로 쓰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아직 대본 쓰는 것이 더 재밌다. 내가 쓴 대본에 연출과 배우의 색이 칠해지는 것이 좋다. 배우들의 눈빛 그림들의 향기가 좋다. 예전에는 시인이나 소설가를 대단하게 보는 풍토였다. 드라마 작가는 잘난 척을 못해 겸손한 작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장르의 구분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그러나 묘비에는 ‘드라마 작가’라고 쓰겠다.

- 인간 노희경을 드라마 캐릭터에 비유한다면.

▲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김영옥 선생님이다. 독단적인 욕쟁이 할머니.(웃음)

권선혜 book@j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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