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기다려지고 그리워질 감동...오는 5월11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JTN뉴스 임귀연 객원기자] 한 번의 관람으로는 그 깊이를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작품이 있다. 내게는 뮤지컬 ‘서편제’가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난 후, 공연 때 느꼈던 아련한 감동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진한 여운과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는 소설과 영화, 창극 등으로 너무도 친숙한 ‘서편제’. 이 작품이 전혀 결이 다른 뮤지컬로 재창조되어 무대 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쉽거나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 ‘서편제’는 윤일상 작곡가나 조광화 작가, 이지나 연출 등 국내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팀의 노력으로 2010년 성공적으로 초연된 이후, 수많은 상을 휩쓸며 꾸준히 무대에 올라 벌써 세 번째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그만큼 배우들과 스태프, 관객들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는 반증이다.

공연을 보기 전, 설레는 기대감 한 구석에는 뻔하고 자칫 진부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뻔한 내용의 이야기를 굳이 뮤지컬로 관람하는 게 과연 그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하는 그런 걱정이었다.

막이 올랐다. 현대적인 첫 느낌부터 시종일관 예상을 뒤엎는 신선함은 그 걱정이 괜한 걱정이었음을 인정하게끔 했다. 어떻게 해야 뮤지컬 다운 ‘서편제’의 매력을 보여주고, 기존의 다른 장르와 차별화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험해 온 제작진의 노력들이 엿보였다.

일단 형식이 신선하고 파격적이다. 영화나 창극의 흐름이 대체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평면적이었던 반면, 뮤지컬 ‘서편제’는 핵심적인 사건 사이마다 중심 인물의 의식에 초점을 두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복잡하게 전개된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마치 예술 영화의 편집을 연상시킬 정도로 절묘한 장면 전환이나, 예술적인 은유가 돋보인다.

비록 예술적이나 친절하지는 않은 서사방식이 극 초반에 다소 혼란을 느끼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여 있는 듯한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관객들이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더욱 다양한 의미를 얻어 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 준 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뮤지컬 ‘서편제’의 매력은 바로 라이브로 듣는 주옥 같은 음악의 힘이다. 작곡가 윤일상이 공들여 작곡한 수 십 개의 풍성한 뮤지컬 넘버들은 이 뮤지컬을 이끌어 가는 언어이자 인물들의 정서에 크나큰 설득력을 불어 넣어준다. 여기에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가세가 더해져 더욱 극적인 감정이 극대화된다.

뮤지컬 ‘서편제’는 ‘송화’라는 한 인물에만 치우치지 않고 ‘송화’, ‘유봉’, ‘동호’ 이렇게 세 인물의 이야기가 균형을 이루며 얽히고 설키며 전개되는 점이었다.

특히 ‘동호’ 역할이 부각되었다. 서양 음악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자신의 소리를 찾아 나서는 ‘동호’의 모습이라던지, 그가 ‘송화’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애틋한 정서가 작품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뮤지컬 ‘서편제’는 록 가수로서 인정받고 성공한 ‘동호’의 라이브 공연의 실황으로 시작된다. 어딘가 외롭고 불안정해 보이는 ‘동호’. 그리고 다음 순간, ‘동호’와 그의 누이 ‘송화’가 마치 낯선 사람과 대화하듯 비장하게 마주 서 있는 장면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동호’의 기억을 따라서 수 십 년 전, 어머니를 여의었을 때부터 ‘동호’와 ‘송화’, 그리고 ‘유봉’ 세 인물의 기구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편제’에 등장하는 세 인물. ‘유봉’과 ‘송화’, ‘동호’는 지극히 인간적이기에 공감과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들인 동시에 또한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진정한 소리꾼이 되고 싶었던 자신의 좌절된 꿈을 자식들에게 강요하는 아버지 ‘유봉’은 우리의 불운한 아버지 세대를 떠올리게 만들어 연민을 자아낸다. 한편 평생 소리밖에 모른 채 살아가는 ‘송화’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사라져가는 우리의 소리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또 비극적인 삶을 한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이 그 자체로 예술을 상징하는 듯 하다.

'동호’는 아버지인 ‘유봉’에 대한 증오와 서양 음악에 대한 호기심으로 새롭게 자신의 길을, 자신만의 음악을 찾아가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지금 현재 사라져가는 것들을 그리워하며 방황하는 우리 세대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하다.

뮤지컬 ‘서편제’는 뻔히 아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색다른 접근을 통해 원작의 포인트는 살리면서도 신선하고 풍부한 느낌을 주었으며, 무대, 조명, 음악, 의상 등 극 속의 다양한 요소들이 잘 조화되어 작품을 더 깊은 차원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직사각형 한지들을 덕지덕지 붙여서 만들어진 듯한 세트와 무대 중앙 회전무대로 구성된 무대는 그 자체로 여백의 미를 담아내듯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또한 이 위에 영상과 조명이 더해져 한지 위에 물감을 그리듯 서서히 물들어가는 동양적인 느낌과 복잡한 인물의 정서가 간접적으로 드러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 기여하는 무대 위의 비현실적인 분위기는 이야기의 흐름과 매끄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초연 때부터 ‘서편제’에 출연했던 이자람, 차지연, 서범석 등 매력적이고 쟁쟁한 배우들의 열연을 빼놓을 수 없다. 이를테면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뮤지컬 넘버의 한 대목을 마치 관객들이 자기 얘기처럼 들리게 만들 듯 진심을 다해 노래하고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고 기꺼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서편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1막과 2막의 엔딩 장면이라 할 수 있다. 1막에서는 두 눈이 먼 송화가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오열할 때, 앙상블을 포함한 모든 배우들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웅장하고 드라마틱하게 노래하는 ‘시간이 가면’이란 뮤지컬 넘버를 감상할 수 있는데, 이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모두의 사명감과도 같은 뜨거운 자부심이 전달되어 와서 절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또한 2막의 엔딩은 그 유명한 ‘송화’가 ‘심청가’의 한 대목을 부르는 장면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그토록 그리워하던 서로를 만났음에도 ‘송화’와 ‘동오’는 알면서도 모르는 체 담담히 소리를 청하며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나눈다.

배경으로 깔리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마치 관조하듯 ‘송화’의 담담한 판소리와 어우러지며, 한을 한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그녀가 수 십 년 동안 쌓이고 쌓인 애틋함과 그리움, 슬픔을 담아 자신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듯 소리를 하는데, 이 장면은 뮤지컬 ‘서편제’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손꼽힌다.

판소리의 절정에서 “떴구나”라는 나직한 읊조림과 함께 그녀는 가슴이 뻥 뚫리듯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린다. 이내 숨죽이며 지켜보던 관객들도 저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대목이다.

눈물은 치유와 위안의 힘이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제자리로, 시간이 가면 모든 건 잊혀진다”는 메시지처럼, 이 작품의 ‘송화’가 그러했던 것처럼, 뮤지컬 ‘서편제’ 속 ‘송화’의 이 씻김굿 같은 ‘심청가’ 판소리 가락이 세상살이에 지치고 상처입고 아픈 많은 이들의 가슴에 뜨거운 눈물을 뿌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과 위안을 앞으로도 계속 전해주길 바란다.

뮤지컬 ‘서편제’는 오는 5월 11일까지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관객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JTN 임귀연 문화 객원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jtn.co.kr

<ⓒ 1+α 문화미디어 JTN NEWS(www.jtn.co.kr) 무단전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