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100% 영화 <사과> 4년 만에 개봉

영화 <사과>(제공/제작 청어람, 공동제공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OCN)가 촬영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건 4년 전. 당시 영화 주간지에 실린 현장 스틸 컷을 보며 ‘아, 곧 괜찮은 영화 하나가 나오겠구나’ 했었다. 그리고 벌써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아득해진 기억을 더듬어 ‘아, 그 영화... 문소리와 김태우가 나온다는!’하는 생각에까지 미쳤을 때, ‘그런데 개봉까지 이토록 오래 걸린 이유는 뭘까?’ 궁금해졌다. 요즘 한국영화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좋은 영화라고 정평이 난 영화까지 광풍에 쓰러졌다 이제야 가까스로 개봉하는 현실을 보니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지금 개봉해서 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배우 이선균의 도약’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유명세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선균은 <사과>에서 문소리의 전 남자친구로 출연했다. 이제 인기스타로 떠오른 그는 당당히 영화 포스터와 크레딧에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올렸다.

‘생활밀착형 로맨스’라는 카피에 맞게 <사과>는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동안 한 여자, 그리고 그녀와 관계된 두 남자의 생활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영화다. 관객에 따라 ‘조금은 지루하겠다’고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들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너무나도 솔직히 담고 있어 공감대 하나만으로 실소를 자아내는 마력이 있다. 그리고 중심에 놓인 한 여자, 현정의 삶은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사랑에 대한 기억의 공통분모를 그대로 들춰내며 미소를 짓게도 얼굴을 화끈거리게도 만든다.



영화를 보면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이 떠올랐다. 다른 점은 <생활의 발견>은 며칠 동안의 이야기를 담지만 <사과>는 연애와 결혼이 주된 테마인 삶의 한 시기를 모두 담아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과>는 ‘15세관람가’라는 것?!! 그러니까 <사과>는 <생활의 발견>의 여자 버전 격이라 해도 괜찮겠다.

인간에게 있어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어딘가에서 고민하고 있을, 바로 우리들의 숙제다. <사과>는 그 풀리지 않는 영원한 숙제, 사랑에 대한 공감 100% 영화다. 강이관 감독은 50쌍의 커플들을 직접 인터뷰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실제 생각들을 영화에 담아내고자 했다. 왜 여자와 남자는 사랑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할까? 이 영화는 ‘현정’, ‘상훈’, ‘민석’ 세 주인공을 통해 사랑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 말과 행동 뒤에 숨은 진실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영화<사과>는 산 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 신인 각본상, 토론토 영화제 국제 평론가협회상 외에도 멜버른 영화제, 도쿄 필름 엑스 영화제 등 수많은 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만큼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다. 먼 길을 돌아 우리 곁에 찾아온 영화이니만큼 소중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이 영화의 개봉(10/16)을 기다렸으면 한다. 한국영화 파이팅!!

“좋은 영화 늦게 보여드리게 돼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지난 9월 24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사과> 언론공개 시사회 현장. 강이관 감독을 비롯한 문소리 김태우 이선균 세 주연배우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무대인사에서 이선균은 “좋은 영화 늦게 보여드리게 돼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며 의미심장한 소감으로 사람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배우 문소리는 이날따라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만감이 교차한다”며 말을 꺼낸 그녀는 “굉장히 좋은 친구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 영화다. 찍고 나서도 자신만만했었는데, 세월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나보다”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김태우는 “영화는 나이를 먹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감동을 주기도 한다”면서 영화 <사과>는 후자 쪽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누구보다도 마음고생이 심했을 강이관 감독은 “왜 이리 사랑하는 게 힘든가 생각하다 착안한 영화”라고 영화를 소개하며 “누구나 겪어봤을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전했다.

-9월 24일 기자간담회 요약-

Q. 영화가 4년 만에 개봉한다. 영화를 본 소감 한 마디 부탁한다.
강이관 감독(이하 '강'): 2001년...그러니까 서른한 살 때 이 영화를 찍으려고 마음먹었었죠.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될 줄, 이런 영화가 나올 줄 몰랐던 것 같아요. 오늘 큰 화면으로 다시 영화를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배우 문소리(이하 '문'): 영화 보는 내내 장이 꼬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습니다. 너무 배가 아파서 삐질삐질 진땀이 날 정도였죠. 제 옛 모습이 낯설고 신기하고... 그립기도 하고... 많이 뿌듯했습니다.
배우 김태우(이하 '김'): 감독님, 영화 잘 봤습니다.
배우 이선균(이하 '이'): 영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연기가 아쉽고 ‘좀 더 잘해 볼 걸~’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영화에 참여했다는 자체가 영광스럽습니다.

Q. 문소리는 여배우라서 ‘시간의 경과’에 굉장히 민감할 것 같다. 4년 전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느꼈나?
문: 영화랑 지금 내 모습이 많이 다른가요?(웃음) 얼굴이 많이 변한 걸 느껴요. 마치 <박하사탕>을 다시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리 오래 전도 아닌데...아, 내가 저런 모습이었지... 저런 느낌이었지... <박하사탕>의 순임은 ‘아직 세상에 찌들지 않은 얼굴’인 것 같아서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해요. <사과>에서의 내 모습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할 때의 모습’이어서 느낌이 다르지만요. 영화에서 장면장면 변화하는 제 모습에 만감이 교차하네요.

Q. 강이관 감독은 실제 50명 커플을 상대로 인터뷰를 한 뒤 시나리오를 썼다고 들었다.
강: 당시 4개월 정도 인터뷰를 했나 봐요. 처음엔 지인들을 중심으로 비밀 엄수를 조건으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범위를 넓혀나갔죠. 여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문제를 겪었는지, 또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봤어요. 그리고 그 상대 남자들도 만나봤죠. 두 사람의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더군요. 성인이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시작하고 2~3년 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곧 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되고, 물론 상처도 받게 되죠. 그러면서 또 다른 의미의 성인으로 자라나는 시기가 바로 이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왠지 찡했다. 문소리는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사이의 경계에서 어떤 남자를 택하겠나?
문: 촬영 당시 그런 얘기를 굉장히 많이 한 것 같아요. 감독님과 여자들의 속마음에 대해 많이 언쟁했었죠. 이 영화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결국 처음처럼 끝까지 가지 못하는 게 바로 사람의 관계인 것 같아요. 여자들은 그러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고요. 극중 현정이도 관계를 유지하는 게 당연해서 첫사랑 민석을 붙들려고 하죠.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싫었던 점도 있었을 거고... 상훈도 처음에는 안 좋아했지만 점점 좋아지고, 나중엔 그 사람과의 관계를 받아들이게 되죠. 관계란 건 재생력도 있고 가끔 스스로 정화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관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봐야 하는 건 아닐까...영화를 찍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Q. (문소리에게) 아까 무대인사에서 “감회가 새롭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문: (늦개봉이 안타까워서) 제가 왜 감회가 새롭다고 했는지 다 아시면서 또 물으시나요?(웃음) <사과>는 내 인생에서 특별하다 싶을 만큼 중요한 영화였습니다. 아마 여기 있는 모두가 그렇겠죠. 촬영현장은 어떤 현장보다도 특별하고 치열하고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꽉 찬 촬영을 끝내고 기대에 많이 부풀어 있었고요. 배우들끼리는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 만족했고. 이렇게 늦게 보여 드리게 되어 너무 안타깝네요. 사실 저희끼리는 그동안 이 영화 굉장히 많이 봤습니다.(웃음) 편집 바뀌면 바뀌었다고 보고. 가을이면 사과 익는다고 보고. 감독님 해외 영화제에서 외로우실까봐 원정도 나가고.

Q. 김태우와 이선균은 어떻게 캐릭터를 설정했나?
김: 시나리오 보고 공감이 많이 가서 좋았습니다. 따로 연출하려고 한 것도 없었죠. 민석 역(이선균)탐났고, 심지어는 여자인 현정 역(문소리)도 탐이 났어요. 모두 공감이 많이 가는 배역들이어서...
이: 제 역할에 대해서는 지금 더 공감이 많이 가는 것 같아요. 왜 여행가서 이별 통보를 해야만 했는지... 민석도 성장통을 같이 겪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랄까. 미래에 대해 확실한 게 하나도 없었잖아요. 지금 영화를 세 번째 보는데 더 많이 공감한 것 같습니다.
문: 한국에는 많은 남자배우들이 있지만, 브래드 피트나 톰 크루즈 같이 강한 캐릭터의 남자배우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8개월 정도의 사전 제작기간 동안 감독님과 남자배우 캐스팅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휴 그랜트, 아니 콜린 퍼스 같은 평범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는 없을까. 이 영화에 나오는 남자 캐릭터들은 평범하다 못해 마초 같고 심지어는 찌질하기까지 하잖아요? 두 분이 살아 있는 캐릭터로 잘 소화해준 것 같아 감사해요. 한국에 이런 배우들이 있다는 게 정말 소중한 일인 것 같습니다.

Q. 문소리와의 호흡은?
김: 모두 아시다시피 문소리는 연기 잘하는 좋은 배우죠. 찍기 전부터 그런 기대감이 있었고요. 문소리 씨는 작품 전체를 읽고 컷 하나하나를 연기하는 배우입니다. 이게 말이 쉽지 어려운 일이거든요. 옆에서 많이 배우기도 하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만날 감독님이랑 싸웠지만.(웃음) 현장을 이끌어가는 힘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즐거운 파트너를 만난 기분이에요. 개봉 못하는 동안 셋이 너무 자주 만났어요. 이제는 영화도 개봉하고 그만 봐도 될 듯해요.(웃음)
이: 처음에는 문소리 씨와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습니다.
김: (이선균이 4년 사이 유명해진 것을 빗대어) 그게 아니라 처음보다 지금 상황이 아~주 많이 바뀐 게 아닌가요?
이: (웃음) 문소리 씨에게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영화에 임하는 자세, 주인의식 같은 책임감을 배웠죠. '아, 이래서 문소리 씨가 인정받는 구나' 느꼈습니다. 우리가 자주 만나는 건 모두 술을 좋아해서죠. 영화 찍은 후에도 자주 만났습니다.



Q. <사과>를 찍을 당시엔 미혼이었고, 개봉하는 지금은 유부녀다. 영화 때문에 결혼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나?
문: 이상하게 결혼하기 전에는 애 엄마 역만 하더니, 막상 결혼하니 아가씨 역할의 영화가 개봉하네요? 이제 본격적으로 아가씨 역만 해볼까요? 하하, 농담이에요.(웃음)
<사과>를 찍으면서 정말 결혼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그래서 제대로 잘 결혼한 것 같고요.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남편(장준환 감독)이 이 영화를 봤어요. 그때가 2006년도였나? 우리가 2006년 12월 24일 결혼했는데 두 달 전인 10월 영화제 때 이 영화를 봤죠. 보고나서 어떠냐고 물었더니 결혼이 무서워진다고 하더군요. 생각했던 것 보다 무섭고 어려운 일인 것 같다고. 그래서 제가 “그럼 어떡해요? 결혼식 물러요?”라고 물어보니까 남편이 “아니, 그래도 결혼은 하자!” 그러더라고요.(웃음) 사실 저도 결혼이 두렵고... 정말 자신 없었어요. 지금도 느끼지만 결혼엔 왕도가 없다고 생각해요.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이선균 씨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첫사랑이 다시 돌아오는 것만은 사절할게요~(웃음)


JTN 현화영기자 / 사진 이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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