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에 대한 유쾌한 전복
남편을 두 명이나 거느린 아내 ‘손예진’, 찌질이 ‘김주혁’을 만나다!

한국 문학계에 센세이션을 불어넣은 동명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길래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던 건 사실이었다. 제목이 ‘아내가 결혼했다’라고 해서 ‘사랑과 결혼에 대한 그저 그런 내용이려니...’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 일으킬만한 이 시대 가정과 사회에 대한 가치의 전복, 저물어가는 가부장제적 관습에 대한 도전을 담고 있었다. 그러한 전복과 도전은 문학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행위 자체로 인해 의미가 확장됐고, 어찌 보면 영화의 성공여부가 한국영화계의 코드를 바꿔 놓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은 커 보인다. 영화를 연출한 정윤수 감독은 이를 의식한 듯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을 뒤집어보는 재미에 집중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넘어가 버리기엔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당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한다면?

한국사회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 상황에 대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극중 노덕훈(김주혁 분)의 반응은 아마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덕훈은 이 어이없고 황당한 아내 주인아(손예진 분)의 말에 뭐라 대꾸도 하지 못하고 숨이 턱턱 막히고 만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라지만 도를 넘어선 그녀의 ‘자유연애’에 한계를 느낀 그는 결국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어머니를 찾아가 “어머닌 어떻게 아버지와 참고 사셨어요?”라고 묻는다. “다 참고 사는 거지. 누구 좋으라고 이혼을 해 줘?”라는 어머니의 대답에 덕훈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결국 이혼하기로 한 마음을 접고 아내의 ‘두 집 살림’을 받아들이는 노덕훈.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행복한 가정생활을 꿈꿨던 그의 앞날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은 것이었다. “어떻게 사랑이 나눠지니?”라며 인아에게 따지는 그의 절규어린 대사는 몇 년 전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CF문구와 겹쳐지며 사랑과 연애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를 짐작케 했다.

김주혁은 왜 ‘찌질이’인가?

 10월 14일 있었던 프레스 시사회 현장. 언론사 기자들의 시선은 김주혁에게로 향했다. 아내의 결혼을 받아들이는 남편을 연기한 그에게 ‘찌질이’라는 애칭이 바로 부여됐고,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던 김주혁도 이를 꽤나 신경 쓰는 눈치였다. 남자의 외도와 두 집 살림은 어느 정도 가볍게 웃어넘기는 우리사회이기에 노덕훈을 연기한 김주혁이 몹시 나약하고 ‘찌질해’ 보였던 건 사실이었다. 그만큼 그가 캐릭터에 잘 몰입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지극히 평범한 이 시대 남자를 연기한 그가 왜 찌질해 보여야 하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였다. 정윤수 감독은 “극중 덕훈은 ‘찌질이’가 아니다. 그를 그렇게 바라보는 건 ‘우리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힘든 우리사회의 통념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지구상에는 아직 모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와 종족들이 있다”면서 “어쩌면 모계사회가 인간들이 상처받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언제나 여자들을 떠나려고만 하고 여자들은 한 곳에 머물며 그런 남자들을 받아 주지 않는가?”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연애와 축구. 그 기막힌 앙상블.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코드는 바로 ‘축구’다.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 축구는 아내의 이중 결혼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남편의 심리를 표현해주는 매개체이자, 그들이 이상을 펼칠 수 있는 유토피아적 신세계로 등장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축구는 그들의 비정상적인(?) 결혼생활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키는 도구로 사용된다. 덕훈에게 있어 다툼 끝에 떠나버린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게 하는 것도 축구요, 아내가 그 자식(?)을 왜 사랑하는지 이해하게 되는 것도 축구 때문이요, 아내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것도 축구를 통해서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단순히 ‘골대에 골이 들어가느냐 마느냐’로 축구를 논할 수 없듯, 결혼 또한 남자와 여자의 감정들이 미묘하게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 영화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이 물음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는 것 어떨런지.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날 수 있습니까?”


JTN 현화영기자 / 사진 이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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