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도살장의 시간' 프레스콜...한 남자의 연극에 대한 사랑과 집착 그려

대산문학상과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감동적이면서도 묵직한 소설을 써온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이승우 작가와 2007년 '네바다로 간다', '짐' 이후 2년만에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한태숙 연출가가 만났다.

이승우 작가의 단편소설 '도살장의 책'이 극단 '물리'의 대표 한태숙 연출가를 만나 연극 '도살장의 시간'으로 재창조돼 관객들을 찾아간다.

연극 '도살장의 시간'은 한 남자의 연극에 대한 치명적인 사랑과 상처, 오랜 방황과 집착을 슬프고 충격적으로 그려낸 작품. 원작이 도살장과 책이라는 이미지의 대비를 통해 '문학의 위기와 몰락'를 그려냈다면 연극은 여기에 책이 아닌 연극을 대입시켰다.

십분 남짓이면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이  한 시간 넘는 연극으로 재탄생된 '도살장의 시간'은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프레스 리허설을 통해 강렬한 연극적 에너지로 채워진 무대를 선보였다.

연극은 인물과 구성, 소재에 대해서는 원작과 다소 차이를 두면서 타악 연주 음악으로 보이지 않는 또다른 공간을 창조해내고, 의상과 소품에 인물의 심리를 형상화 하는 등 소설의 상징적인 부분들을 보다 구체화시켜 관객과의 소통을 이끌어냈다.

한태숙 연출가는 "소설을 연극으로 재창조해내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소설의 모호함을 표현할 구체성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며 "여러 장치들을 통해 소설의 상징성과 모호함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9개월간 작가와 대본 작업을 하면서 이 소설은 처음부터 연극으로 태어나야할 소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속적인 공연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부식되는 모든 것들은 냄새를 풍긴다. 냄새는 부식의 증거. 시간은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사물들을 분해한다. 그리고 마침내 냄새마저 사라져버리면, 연극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증명하겠는가"

주인공 '천편'역의 배우 박지일은 극중 이 대사에 대해 "연극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 또는 비애이면서도 연극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극에 대한 미칠듯한 사랑과 집착을 가진 '천편'처럼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는 그 순간의 희열과 극한의 감정과 감각들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을 미치게 하고, 과도한 열정을 갖게하고, 때로는 그것이 사람을 다치게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 남자의 연극에 대한 미칠듯한 사랑과 치명적인 상처, 연극으로 인한 수십년의 방황과 꺼지지 않는 집착을 통해 연극의 위기, 21세기에 사라져가는 그 '무엇'에 대해 그려낸 연극 '도살장의 시간'은 10월27부터 11월8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JTN 윤보라 기자 / 사진 유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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