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 낯선 이들과 함께한 방문기…3國 감독들의 독창적인 시선 돋보여

한국을 대표하는 리얼리즘 영화감독 홍상수가 일본의 가와세 나오미, 필리핀의 라브 디아즈와 함께 만든 옴니버스 영화 ‘어떤 방문’이 오는 11월1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09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3인3색 프로젝트로 제작된 이 영화는 ‘우연한 만남과 필연적 사건’이란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세 감독의 독창적인 시선을 담은 작품.

나라는 다르지만 낯선 곳으로 떠난 여행에서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특별한 사건들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 Episode 1. ‘코마(Koma)’ (감독 가와세 나오미)



일본의 나라 지역에 있는 미와산 근처에는 작고 둥근 마을이 있다. 마을의 이름은 ‘코마’인데, 이곳이 이제껏 둥근 모양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사람들은 숲이 우거진 미와산의 나무와 풀들에 어떤 신의 힘이 깃들어져 있다고 믿어왔다.

가와세 감독은 이 신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쵸후쿠지 신사에서 발견됐다는 한국의 고구려왕을 닮은 남자의 그림이 그려진 족자에 관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와 단편 ‘코마’를 완성했다고 한다.



여성 감독 특유의 서정적인 영상과 섬세한 연출로 일본의 대표적 감성주의 작가로 호평을 받아온 가와세 감독은 재일교포 3세 ‘강준일’(키타무라 카즈키 분)을 주인공으로 전작들에서처럼 일본의 정서에 한국적인 느낌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영화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전달하기 위해 코마 마을을 방문한 강준일이 그곳에서 하츠코(나카무라 유코 분)를 만나 나누는 내면적 교감과 사랑을 그린다. 감독은 한국과 일본의 판소리를 극중에 삽입, 두 인물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해냈다.

# Episode 2. ‘첩첩산중’ (감독 홍상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후 올해 두 번째 작품을 내놓은 홍상수 감독은 단편이지만 강렬한 에피소드 ‘첩첩산중’을 통해 이미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런던 국제영화제 등 해외평단에서 호평을 받았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일들을 롱테이크 기법을 통해 절묘하게 끄집어내며 국내외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해온 홍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역시 그만의 장기를 살려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소소한 일상에의 묘사,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이야기가 30분 남짓의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

배우 정유미는 여주인공 ‘미숙’ 역을 맡아 내레이션과 함께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미숙은 어느 날 친구 ‘진영’(김진경 분)이 있는 전주에 내려가 옛 애인인 ‘정선생’(문성근 분)과 재회한다. 하지만 진영과 정선생이 만나는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미숙은 질투에 화가 나 헤어진 남자친구 ‘명우’를 전주로 부른다.



이들 네 남녀의 얽히고설킨 감정은 마치 첩첩산중으로 흐르고, 영화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진짜 ‘첩첩산중’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며 짧은 이야기를 유쾌하게 마무리한다.

감독은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이기 보다는 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며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과 기획의도에 대해 설명했다.

# Episode 3.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 (감독 라브 디아즈)



국내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라브 디아즈은 ‘필리핀 3부작’으로 불리는 ‘바탕 웨스트 사이드’, ‘필리핀 가족의 진화’, ‘헤레미아스’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감독이다.

국민이 하나로 화합되지 못하고 표류할 수밖에 없는 필리핀 사회의 패러다임을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봐온 감독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필리핀의 마린두케라는 섬에서 영감을 얻어 ‘인간이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에 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 영화는 실제 이 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직접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감독은 15년전 캐나다의 한 금광회사가 문을 닫으며 갑자기 어려움에 직면한 주민들의 모습과, 갑자기 그곳을 방문한 한 여자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게 되는 상황 등 실제의 사건들을 토대로 과거 식민지의 문제와 다국적 기업이 가져다준 번영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힘든 필리핀 사람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JTN평점 ●●●●○

JTN 현화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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