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희 ‘갤러리 와’ 관장이 전시된 사진들을 펼쳐보이고 있다.

사진 전문 전시 공간...“사진은 가장 진솔한 삶의 기록”

최근 경기도 양평에 있는 사진 전문 갤러리 ‘갤러리 와’의 김경희(56) 관장에게 이병용 작가가 찾아 왔다. 그는 터키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 사진을 김 관장에게 보여주며 전시를 도와달라고 했다. 2008년 6개월 동안 터키의 50개 도시를 돌며 찍은 작품이었다.

6월 12일 ‘갤러리 와’에서 만난 김 관장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터키인들이 잊혀지고 있다며 그가 눈물을 흘리더라”고 말했다. 김 관장은 돈 낼 형편이 안 되는 그에게 대관료를 받지 않고 전시회를 열어줬다. 열정이 있는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김 관장은 신인 사진작가들에게 전시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2005년에 ‘갤러리 와’를 열었다. 지금은 갤러리에서 사진 전시가 일반적이지만, 당시만 해도 사진 전시를 기획하는 전시장은 거의 없었다. 사진작가가 작품을 모아 갤러리에 보여줘도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사진 전문 갤러리를 열기로 결심했던 것.

남한강변에 현대적인 디자인의 건물을 짓고, 기왓장을 잘라 외벽에 겹겹이 포갰다. 이름은 ‘기와 와(瓦)’ 자를 써서 ‘갤러리 와’라고 붙였다. 여기에선 주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시한다.

그동안 강운구, 김수남, 성남훈, 이재갑 등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들의 전시회가 열렸다. 1년에 한 번은 신인 작가 10명 정도를 모아 그룹 전시도 개최한다.



▲ 경기도 양평에 있는 사진 전문 갤러리 ‘갤러리 와’.

‘갤러리 와’를 운영한 지 이제 4년이 지났지만 걸어온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수익을 내기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갤러리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남편이 눈치를 주기도 했죠.”

갤러리를 연 지 3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갤러리가 서울에서 멀어 방문객이 많지 않아 고전했다. 지금은 사진작가라면 누구나 아는 곳이 됐지만. 김 관장은 서울 청담동 자택 1층에 ‘갤러리 와’ 분관을 열었다. 하지만 현재 ‘갤러리 와’의 매출 대부분은 양평 본관에서 발생한다.

“거리가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보고 싶은 사진이 있다면 멀어도 양평까지 오더라고요.”

큰 수익을 내지는 못했지만 초기 목표였던 신인 작가 지원에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그는 “‘2008 대구사진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 중에 ‘갤러리 와’에서 전시했던 작가가 50%를 차지했다”고 자랑했다.

많은 사진작가들의 데뷔를 도와준 덕에 ‘갤러리 와’는 현재 사진작가들의 등용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남훈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는 거기에서 전시회를 가진 후 유명해졌다. 지금은 전주대 사진학과 객원 교수로 활동한다.

김 관장 자신도 사진작가다. 젊은 시절부터 사진을 좋아했던 그는 30년 동안 가정주부로 살면서 이 취미 활동을 잊었다. 다시 카메라를 잡은 것은 8년 동안 치매를 앓던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였다.

“정신이 무척 피폐해져 있을 때 남편이 ‘니콘F4’ 카메라를 가져왔어요. 당시로선 최첨단 제품이었죠. 주변 사람이 권해 구입했는데 작동법을 모른다며 제게 줬어요.”

그때부터 그는 세상 풍경을 렌즈에 담았다. 그는 이 사진을 봉사 활동을 하던 교도소에서 만난 사형수들에게 보여줬다. 보이는 건 오직 하늘밖에 없는 창틀 안에 갇힌 사형수들에게 그의 사진은 큰 감동이었다. 몇몇은 성당 건물 사진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형수들이 감동 받을 때마다 김 관장은 사진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그의 이 사진은 2006년에 개봉한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주인공이 사형수에게 바깥 풍경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에 사용되기도 했다.

요즘도 그는 사진을 찍는다. 최근에는 에이즈 환자들의 일상생활 모습을 촬영한다. 가톨릭 재단에서 후원하는 에이즈 공동체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이들이 식사하거나 웃는 모습을 렌즈에 담고 있다.

“에이즈 환자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며 환자들에게 제 진심을 전했죠.”

처음에는 사진 찍기를 꺼리던 환자들이 이제는 모임을 가질 때 김 관장에게 먼저 사진 촬영을 요청한다. 그는 조만간 그동안 찍은 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갤러리 와’를 사진 미술관으로 개조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동안 모은 상당수의 작품을 전시할 미술관이다. 그중 다수는 ‘갤러리 와’에서 소개했지만 판매가 이뤄지지 않아 김 관장이 직접 구매해야 했던 작품들이다. 얼마 전엔 미국 유학생인 김정현 작가의 작품을 대부분 구입했다.

“미술을 전공한 김 작가의 사진에서 그림 느낌이 무척 좋았어요. 하지만 많이 팔리진 않았죠. 사진을 넣을 액자 비용도 엄청났는데…. 김 작가가 학비를 직접 벌어 쓸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은 걸 알고 결국 남은 작품을 전부 구매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갤러리를 운영하며 김 관장은 새로운 삶을 찾았다. “나이 50도 꿈을 꾸기엔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출처=Forbes Korea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