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라는 오케스트라 속 '사랑'에 관한 변주곡

[JTN뉴스 임귀연 객원기자] 요즘 극장가는 ‘인터스텔라’ 열풍에 휩싸여 있다.
예매율 90퍼센트를 넘는 데다 지난 15일 영진위 영화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2주차에 접어들며 벌써 50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 기세라면 1000만 관객을 넘는 것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이쯤 되면 워낙 상영관이 많아 ‘울며 겨자 먹기’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작품이 주는 진지함이나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호기심과 설렘을 안고서 기꺼이 매진행렬에 동참하는 관객들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 놀라운 흥행 열풍에는 ‘인셉션’, ’다크나이트 3부작’ 등 손 대는 작품마다 특유의 세계관과 독특한 스타일로 평단을 흥분시켰던 믿고 보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명성이 큰 몫을 차지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다크나이트’나 ‘인셉션’에서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성취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킵 손’이 프로듀서로 적극 참여해 시나리오의 자문을 맡아 그동안 상상의 영역으로만 머물러 있던 웜홀과 블랙홀 등을 과학적인 동시에 최첨단의 사실적인 비주얼로 구현해낸 최초의 SF 영화이자, 그 안에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개인적 이야기를 놀랍도록 잘 녹여내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주를 배경으로 자식들의 미래를 지켜주기 위해 머나먼 우주탐사에 나선 아빠와 그 아버지의 부재에서 자유롭지 못한 딸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 말할 수 있다.

가족애라는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인터스텔라’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영화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먼 거리에서, 심지어는 태양계를 넘어 다른 은하계로까지 확장시켜 전무후무한 이산가족의 이야기로 완성시켰다.

많은 관객들이 예상한 바와 달리 이 영화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라든지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처럼 엄청난 물량공세와 화려한 CG로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그런 SF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영화 초반, ‘유령’의 존재를 믿지 않는 ‘쿠퍼’처럼 우리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인간적인 가치를 과학적인 접근방식으로 진중하게 풀어내려 시도한 놀란 감독 특유의 정교함과 우직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감독이 이야기의 서사에서 멸망을 앞둔 암울한 미래에 봉착한 인류의 미래를 거시적인 관점보다는 전직 우주비행사이지만 지금은 담담히 흙 먼지에 뒤덮인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쿠퍼 가족의 이야기로 대신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화의 전반부는 SF영화 특유의 스펙터클 보다는 어떤 불가사의한 초자연적 현상에 이끌려 운명처럼 우주로 향하는 아버지로서 ‘쿠퍼’와 그가 우주로 떠날 수 밖에 없으며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이유인 그의 딸 ‘머피’가 맺는 관계에 대해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일견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여러 장면들이 우연적인 동시에 너무나 필연적이라는 사실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상징적인 동시에 암시적인 의미의 대사들과 복선 등의 영화적 장치들로 가득 찬 영화의 전반부는 후반부에서 큰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미지의 세계인 우주로 떠난 ‘쿠퍼’ 일행의 항해는 순조로워 보이지만, 예측 불가능한 몇 가지 변수들에 크게 발목을 잡히고 만다. 흥미로운 건 그 변수들이 ‘에일리언’과 같은 SF 영화 속 미지의 외계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에게 공기처럼 친숙한 ‘시간’이라는 개념이거나 때로는 ‘인간’이라는 불확실한 우리 존재 자체라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고 표현하는 방식은 놀랍도록 효과적이고 의미심장하다. 과학적인 이론을 적극 활용, 블랙홀 근처의 어느 행성에서 보내는 1시간이 지구 시간으로는 무려 7년이라는 설정을 통해 무심코 흘려 보내온 ‘시간’이라는 가치를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를 통해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어느새 훌쩍 커서 자기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버린 딸 아이의 영상메시지를 보고는 할 말을 잃고 오열하는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는 가슴 절절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 때, 상상력에 기반한 우주 공간 속 시간의 상대성은 단순히 과학적인 이론이 아닌 냉엄한 현실이 된다.

이 영화 속에서 조연의 비중이지만 ‘씬 스틸러’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만’ 박사 역할에는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멧 데이먼’이 열연했다. 웬만한 눈썰미가 아니면 한 눈에 그임을 알아보기 쉽지 않으나, 짧은 등장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영화의 서사를 뒤틀어 버리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어두운 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마오’라는 구절로 시작되어 ‘인터스텔라’ 영화 전반에서 자주 인용되는 ‘딜런 토마스’의 시는 흥미롭게도 여러 관점에서 다양하게 해석해볼 수 있다.

우주탐사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인 ‘브랜드’ 노교수의 입장에서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불가능하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파랑새를 만들어 현재를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한편, ‘만’ 박사의 입장에서는 살기 위한 인간본연의 생존본능이자 대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개인적 이기심이라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쿠퍼’와 ‘머피’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실낱 같은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어 시공간을 초월해 교감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된다.

‘사랑은 과학으로는 도무지 다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며, 그 간절함은 시공간마저 초월하여 세계를 구할 수 있는 힘’이라는 이 간결한 결론이 주는 메시지를 이토록 과학적인 태도로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또한 인간적이고 드라마틱하게 구현해 낼 수 있다니 진심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문득,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무한대로 확장된 우주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영화 속 이야기는 마치 소설 ‘연금술사’ 속에서 보물이 있는 곳이 원래 여행을 떠나기 전 머물러 있던 장소라는 결말이 상징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이 머나먼 은하계를 뛰어넘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딸 ‘머피’의 방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의 결실을 맺는 순간을 장엄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우리의 미래를 바꾸고 개척하는 힘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우리들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도 색다르게 전달한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장대한 스케일의 우주라는 오케스트라 속에서 펼쳐지는 가슴 뜨거운 사랑 노래이자 흥미진진한 변주곡이다. 또한 ‘시간’을 자유자재로 늘이고 줄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천재적인 지휘와 더불어 ‘한스 짐머’의 웅장한 음악의 조화는 스크린에서 우주를 만나는 관객들이 실제 상영시간에 비해 체감하는 시간을 훨씬 짧게 만드는 경이로운 경험을 기꺼이 선사해 줄 것이다.

JTN 임귀연 문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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