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과 사투 후 건강한 청년으로 거듭나기까지
25살 김제헌 씨의 ‘100일 몸짱 프로젝트’ 도전기

서울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 11일 오전부터 건장한 청년 몇명이 운동과 사진촬영을 겸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잘 알려진 ‘아놀드 홍, 100일간의 몸짱 약속’이라는 헬스 프로그램의 마지막 프로필 화보촬영이 있었던 것. 이 청년들이 바로 100일간의 수련을 이겨내고 진정한 ‘몸짱’으로 거듭난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중 유난히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 김제헌(25) 씨. 그는 불과 1년 전 만해도 백혈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환자였다. 그런 그가 이제는 완벽한 근육질의 몸짱 사내가 되어 카메라 앞에, 아니 세상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처음 병을 알고 나서 ‘그냥 죽는구나’하는 생각뿐이었죠”

“어린 나이에 선고를 받고나니 점점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이 사라졌어요. ‘모든 것이 여기서 끝나는 구나’하는 심정으로 그저 숨어들고만 싶었죠.”

과거 140kg에서 68kg까지 무려 70kg 가까이 감량을 한 경험이 있는 제헌 씨는 3년전 어느날 후두염에 걸려 턱이 목 아래까지 내려오는 심각한 상황을 맞았다. 그때 목에 뚫은 구멍으로 인해 90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참아야 했다고. 설상가상으로 급성 골수성 백혈병 선고까지 받게 된 제헌 씨는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채 ‘먹고 싶은 거나 실컷 먹자’는 생각에 다시 살이 찌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이 도운 탓인지 지난해 7월 골수이식을 받고 수술경과가 좋아 같은해 8월 퇴원했다.

“이식수술을 받고나니 어느 순간 ‘이게 아닌데...’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소심해진 자신을 추스려 예전처럼 살을 빼 몸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죠. 그러던중 100일간의 몸짱 만들기 프로젝트를 알게 됐고 바로 지원했어요. 그동안 병 때문에 뭔가에 몰두할 기회가 없었는데 운동이라면 할 수 있겠다 싶었죠.”


△ 도석진 트레이너(좌)와 김제헌 씨 [사진=JTN]

그의 특별한 사연을 들은 주최 측은 오랜 회의 끝에 그를 도전자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촬영장에서 만난 도석진(Henney) 트레이너는 제헌 씨에 대해 “당시에도 약을 복용중이었고 무리한 운동을 하게 되면 위험부담도 많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트레이너들이 반대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루게 해준 건 바로 제헌 씨 스스로의 의지 때문이었다고.

트레이너들은 무엇보다 제헌 씨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고 약을 먹으면서도 무리가 가지 않는 선 안에서 운동 프로그램을 짰다. 그는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제헌 군이 건강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몸을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 모두가 감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레이닝 과정이요? 일일히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어요”

지난 100일간 몸짱으로 거듭나기까지 제헌 씨의 피나는 노력은 계속됐다. 매일의 운동 프로그램은 새벽 6시 기상해 ‘공복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오전 개인 트레이닝이 끝나면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담당 선생님 트레이너들과의 집중 근력 트레이닝, 30~50분간 러닝머신 운동을 이어나갔다. 매 끼니마다 고단백 저탄수화물의 식사를 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과중 하나였다.

늦은 오후까지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면 제헌 씨는 따로 집근처 헬스클럽에서 찾아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남들보다 특별한 이력(?) 덕분에 딱히 할 일도 없었다”며 웃음을 지어보인 그는 “정말 열심히 해서 헬스트레이너를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꿈도 갖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100일 동안 그만 끝내고 싶은 유혹도 많았다고. 그에게도 친구들과 만나 술도 마시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는 평범한 일상이 그리운 순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흔들리는 그를 잡아준 것 역시 친구들. 그의 죽마고우 친구들은 “너는 어렸을 때부터 뭐든지 다 지독하게 해냈으니 이번에도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를 다독여줬다. 반면 “아픈 놈이 집에서 쉬지 왜 힘든 일을 하려 하느냐”며 모진 말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더욱 끝까지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제헌 씨는 수련과정 동안 “음식보다는 수분을 조절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데피니션’이라고 몸의 각을 만드는 과정중에 수분조절은 필수죠. 오늘 촬영을 위해 3일 전부터 온갖 형태의 수분을 섭취하지 못했어요. 말린 누룽지나 닭 가슴살 등 모든 음식을 말려서 섭취해야 했죠. 이 촬영만 끝나면 물을 실컷 마실 거예요.”

또한 그는 “골수이식으로 새 삶을 되찾고 100일간의 힘겨운 과정을 이겨낸 데에는 어머니의 기도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이식수술을 받을 무렵 어머니는 매일같이 성당에 나가 기도를 했고, 어머니의 회사 동료들은 기부와 인터넷 캠페인을 통해 제헌 씨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처음 운동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네가 정말 잘 할 수 있겠어?’라며 걱정은 하셨지만 하지 말라고 막지는 않으셨어요. 특히 음식조절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죠. 매일 닭가슴살을 요리하고 삶은 계란의 흰자만 고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저는 한 종류의 음식을 먹다보니 몹시 예민해져서 어머니를 힘들게 해드린 적도 많아요. 그럴 때도 어머닌 뭐라고 말씀 한 마디 안하시고 그저 묵묵히 지켜봐주실 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게 오기였고 발악. 가슴 속 깊이 뜨거운 뭔가가 느껴졌죠.”

3년 전, 제헌 씨는 자신에게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상상이나 했었을까? 그는 백혈병 선고 후 얼마 살지 못할 거란 두려움에 깊은 절망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판정을 받고 나서 오래 못 간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는 뭐라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중환자실에서 내가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뭐, 어차피…백혈병이라는 거 다 죽는거잖아’ 했죠. 저 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이 같은 상황이라면 그렇게 됐을 거예요.”



그럼에도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게 오기고 발악이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가슴 속에서 뭔가 ‘하고 싶다, 이건 아닌 것 같다. 아직 22살인데 못해본 게 너무 많다.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보고 죽자’란 생각이 뜨겁게 일어났다는 것.

“100일간의 트레이닝이 끝나고 나니 기분이 몹시 좋을 것 같죠? 사실 안 그래요. 아쉬움과 후회가 더 많이 남아요. ‘한 번씩만 더 해볼 걸…0.1초라도 더 버틸 걸…선생님들 말씀 조금만 더 충실히 들을 걸…그랬으면 지금 조금 더 나아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죠.”

하지만 그런 아쉬움들은 아쉬움대로 그냥 접어두기로 했다. 요즘도 가끔 정기검진차 병원에 들를 때면 같은 병을 앓고도 아직 휠체어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고. 그에게도 분명 2년간 병상에만 누워 있던 시절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100일 만에 건강한 생각과 멋진 몸을 가진 청년이 돼 그들 앞에 섰다.

“세상의 아픈 젊은이들이게 ‘우리도 하면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드리고 싶어요”

100일간의 프로젝트를 무사히 잘 마친 제헌 씨는 오는 9월부터 앞날을 위한 새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아픈 이들의 재활을 돕는 헬스트레이너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교육과정을 밟고 관련 자격증 시험에도 도전해볼 계획.

“물론 몸짱 열풍에 편승해 ‘스타 트레이너’로서 이름을 날리고 싶기도 하죠. 중요한 건 그런 게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난치병을 극복하고 헬스트레이너나 운동선수가 된 케이스가 드문데 제가 그 본보기가 돼보려고요. 저처럼 아픈 젊은이들에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던가. 한번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꽃이 되기보다는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 나가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제헌 씨의 모습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세상의 끝에서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이 다가온다면 제헌 씨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이렇게 외쳐보면 어떨까. “그래, 다시 시작하자. 나는 세상과 맞서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어!”

건강한 트레이너로서 사람들 앞에 다시 서게 될 그의 앞날에 찬란한 박수를 보낸다.


JTN 현화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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