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만난 젊은 농사꾼, 경상북도 의성군 이두선

대학 다닐 때는 누구보다 앞장서 학생운동 을 했다. 졸업 후에는 잘 나가는 영업사원이었다. 남 부러울 것 없어보이던 29세 열혈청년이 돌연 농촌행을 택했다.

“물론 주위에서 많이 반대하셨죠. 부모님은 직장 잘 다니던 큰 아들이 갑자기 농촌 으로 간다고 놀라셨고, 친구들도 어차피 다시 올라올 바에는 내려가지 말라는 반응이었어요”

하지만 청년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과감히 농촌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해서 다섯 달째. 청년은 어느덧 양복보다 작업복이, 구두보다 장화가 더 어울리는 농사꾼 으로 탈바꿈했다. 경북 의성군 단밀면 주선리, 새내기 농군 이두선 (29세)씨의 얘기다.

우연이 아니었던 귀농

남들은 뜻밖이라 했지만, 이씨의 귀농은 자못 주도면밀 했다. 처음 귀농을 결심하게 된 것은 졸업을 앞둔 대학 4학년 때의 일이었다. “대학 다닐 때 농활(농촌 봉사활동)을 많이 갔어요. 농활을 통해 농촌을 경험 하면서 ‘천천히 사는 삶’, ‘여유롭게 사는 삶’ 에 대한 관심이 생겼죠”

하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라 도시 생활에 익숙했을 두선씨가 갑자기 시골 생활을 동경하게 된 까닭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제 전공이 전자통신인데요. 사실 이 쪽 분야가 굉장히 3D업종이거든요. 돈 벌기는 농사보다 쉬울지 몰라도, 쳇바퀴 구르는 것 같은 도시의 삶이 과연 잘 사는 삶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멋지게 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결심한 농촌행 . 그의 이런 생각은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쳤다. 본디 시골 출신이던 부모님은 맏아들이 그 고된 농사일 을 한다는 것이 마뜩치 않았던 것. 그는 대학 졸업 후 1년 반 동안 회사를 다니며 부모님을 설득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농사도 농사지만, 나중에 부모님이 오셔서 쉬어갈 수 있는 집을 농촌에 만들겠노라 약속했어요. 처음에는 완강하시던 부모님도 TV로 성공한 귀농사례 같은 것을 보시더니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더라고요”

1년 반은 귀농 준비 를 위해서 필수적인 시간이었다. 영농조합 에 근무하며 농산물 유통환경을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했다. 농촌 정착 자금을 마련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 싶었던 올 4월, 경북 의성으로 내려왔다. 대학 때처럼 ‘봉사활동’ 을 위해서가 아니라 뿌리내려 ‘살기 위해서’였다.



또 한 분의 '아부지', '어무니'

그가 귀농을 결정하는데 절대적이었던 한 사람, 그가 ‘아부지’ 라 부르는 정용선씨(53)다. 누군가 왜 젊은 나이에 농촌으로 왔는지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아부지가 오라캐서 왔죠”라고 대답한다.

그는 대학시절 의성으로 농활을 왔다가 정씨를 만났다. "아부지"라 부르며 정 씨를 유독 따랐다. 그는 12년 전 도시에서 시골로 무작정 귀농했던 ‘귀농1세대’ 이다. 정씨가 귀농을 적극 권했다.  “도시에서 아득바득 살아서 뭐하겠노. 여기는 내가 이미 일궈놓은 것도 있고 하니까 고마 내려오라캤지”

농사일에 마음이 있던 이씨는 그 말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아무 연고도 없는 의성으로 내려왔다. 이씨는 서울의 부모님을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는 대신 이 곳의 부모님을 ‘아부지’, ‘어무니’ 라 부른다. 이씨가 무슨 말만 해도 빵빵 터지는 15살 터울의 어무니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동료인 20살 종락이, 이 씨에게 특별과외를 받는 두 여동생들까지. 모두가 소중한 또 하나의 가족 이다.

‘비정규직 농민’의 쉽지 않은 행보, 그러나…

스스로를 ‘비정규직 농민’ 이라 칭하는 이두선씨. 두선씨는 현재 정부에서 젊은 인구의 농촌 정착을 위해 시행한 ‘농업인턴’ 으로 매달 120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 급여의 80%는 정부가, 20%는 농가, 즉 정씨가 부담한다.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서러운 게 ‘비정규직’과 ‘농민’이라는데, 그 두 개를 한꺼번에 하고 있는 셈이죠”

‘비정규직 농민’ 이 씨의 출사표인 올해 농사는 사정이 썩 좋지 못하다. ‘가족’들과 함께 '농약 無', '화학비료 無', '퇴비 無' 이른바 '3無' 를 고집한 유기농 사과 재배와 벼농사는 둘 다 작황이 좋지 못했다.

“ 연구가 부족 해서 올해는 벼와 사과 둘 다 어려웠어요, 벼농사는 7년 전부터 짓던 거고 사과는 올해 처음 소출을 낸 건데 두 가지 모두에 신경을 쓰려다보니 손이 부족하더라고요. 사과는 그나마 성한 것들만 몇 개 건져서 지인들한테 팔았는데 ‘못생겼지만 맛있다’ 는 반응이더군요”

그래서 내년 농사는 아쉽지만 유기농에서 ‘저농약’ 으로 목표치를 약간 낮추기로 했다. 하지만 유기농에 대한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농사를) 지어야죠.” 그가 이 자리에서 바로 따서 건넨 사과 하나, 옷에 쓱쓱 닦아 한 입 베어 물었다. ‘듣던 대로’ 못생겼지만 맛있는 사과였다.

서울 촌놈, 시골 촌놈이 될 그 날까지…

“먼저 상표등록을 해서 우리 가족이 생산한 사과를 브랜드화하고 싶어요. 그리고 영농조합에서 일할 때 얻은 (농산물) 유통 관련 지식을 활용해 보고도 싶고요. 상품 중 유일하게 생산자가 가격을 못 매기는 게 농산물 이잖아요. 그런 유통 구조를 타파해서, 제 농산물만큼은 제가 직접 가격을 매기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요새 한창 주목을 받고 있는 체험농 에도 관심이 많다. “ 농산물의 브랜드화 를 통해 상품 그 자체만이 아니라 추억을 함께 팔고 싶어요. 사과도 그냥 사과가 아니라 얘깃거리와 추억이 담긴 사과로, 스토리텔링 을 씌우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 도시 사람들이 지쳤을 때 놀러올 수 있는 집을 짓는 것도 제 꿈이에요. 과수원도 사람들이 와서 직접 사과를 따먹을 수 있는 체험농장으로 바꾸려고요”

영농계획은 이렇게 야무지게 구상하고 있지만, 가족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 짐짓 궁금해진 기자가 슬쩍 찔러 물어봤다.

“ 농촌 총각 결혼 하기 힘들다는데, 결혼 걱정 안돼요?”
“당연히 되죠. 대학 후배들 놀러오면 제발 너희들은 서울 올라가면 '농촌 총각 장가 보내기' 운동하라고 그러는걸요. 어디, 농사짓고 싶은 전지현 같은 여자 없나요?”



그의 블로그 이름은 ‘서울촌놈의 우당탕탕 도시탈출기’ 이다. 아직은 농사일 할 때 반팔 입었다가 풀독 오르고, 경상도 사투리가 어색한 서울 촌놈이다. 하지만, 진정한 시골 촌놈이 되려는 그의 여정은 계속된다. 그것이 바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 못지않게 중요한, 열혈청년 이씨가 농촌으로 간 까닭이기 때문이다.


[이두선씨 블로그 바로가기 : http://blog.naver.com/doosuns0330 ]
[글/사진 : 농림수산식품부 블로그 기자 이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