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미국에서 시작된 싱글음반이 이제 국내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90년도 초반만 해도 국내음반시장에 싱글발매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10~20년 사이 음반시장은 최 단기간 앨범 발매를 의무화 한 듯 보인다. 물론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돌 가수들에 한에서 말이다.

싱글 외에도 미니, EP, 리패키지 앨범을 발매하면서 마지막 무대 혹은 고별인사를 하고 곧 컴백 무대로 이어진다.  EP(Extended Play)는 싱글 앨범보다는 많은 4곡에서 7곡 정도의 곡을 수록하는 것이 기본이고, 리패키지 음반은 정규 음반에 몇 곡을 더 넣거나 정규 음반을 변형해 화보집이나 뮤직비디오를 넣는 것을 말한다. 현재 최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소녀시대의 ‘런 데빌 런’도 정규 음반에 세 곡을 첨부하여 다시 만들어진 리패키지 음반에 들어있는 후속곡이다. 티아라, 2AM도 리패키지 음반을 발매하였고 카라와 비스트는 EP앨범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렇게 짧은 주기를 반복하면서 음반을 발매하고 2~3달 가량의 활동을 하다 보니 급하게 나왔다 급하게 사라지는 바람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만큼 최 단시간 최상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대중의 이목을 받다가 조금이라도 싫증이 날 듯 싶으면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짧은 활동을 하고 다음 음반을 준비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매우 짧아졌다. 아니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다음 음반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컴백 무대가 빨라진 것이다.

그러나 음반 작업에 참여도 하지 않는 가수가 가수인가? 자신이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오늘 어떤 녹음을 하는지 매니저를 통해 연락받거나 녹음실에 와서야 자신이 불러야 하는 노래를 확인하게 된다. 워낙 짧은 파트를 하기 때문에 연습은 녹음을 하면서 진행된다. 가사는 녹음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도착이 되고 급하게 가사를 익히는 가수들은 수많은 반복 녹음으로 최상의 노래를 얻게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제작자와 상의하고 그 곡을 써줄 작곡가를 함께 만나면서 노래 지도를 받고 많은 시간 연습을 한 후 음반 녹음에 들어가는 게 상식적인데, 아이돌 그룹은 연습이 필요가 없다. 단지 자신의 파트의 멜로디와 가사를 익히는 것으로 연습은 끝이 난다. 오랜 트레이닝 기간인 몇 년이라는 시간만 내세운 채 활동에 들어가는 순간 연습은 끝이 나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전곡을 다 부를 일도 없고 굳이 연습을 하지 않아도 방송을 하는데 지장은 없으니 굳이 연습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을 하는 것이다.

멤버가 많은 그룹은 녹음 날짜를 제각기 따로 잡아서 녹음을 하기도 하고 노래 못하는 몇명 때문에 한곡을 녹음하는 데 많은 날을 소비하기도 한다. 어렵게 녹음된 노래를 가지고 믹싱을 하는 엔지니어나 작곡가는 밀린 박자와 틀린 음정을 오토튠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완벽하게 완성을 해준다. 워낙 후크송이 많아 반복이 많으니 한 번 노래를 해놓으면 모든 걸 복사하기 때문에 녹음 시간도 매우 단축 되었다. 환경이 열악한 과거에는 녹음을 한 번에 해야 하기 때문에 부분 부분 수정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고 녹음을 했겠느냔 말이다. 바쁜  스케줄에 시간을 내어 음반 녹음을 하는 현실이 바람직한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두 마디 노래하기 위해 하루 종일 춤을 추는 아이돌이 진정 가수일까 댄서일까?

하지만 아이돌 가수들은 음반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잠시 순위에서 밀려나기라도 할 듯싶으면 예능프로에 나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버라이어티 프로에 나와서는 숨김없이 사생활을 폭로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가수들은 자신의 이미지에 흠이 생기는 예능 프로는 최대한 자제를 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수룩한 듯 소극적인 모습으로 난처한 상황을 모면 했다. 그래서 자주 방송에서 볼 수 없는 가수들의 신비감은 팬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고 영원히 꺼지지 않을 만큼의 모습만을 드러내며 오랜 생명을 보장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5년이면 은퇴를 하거나 활동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 연예계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실력이 부족한 아이돌 가수들이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백댄서의 자리를 뺏어버린 불필요한 멤버들이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조금 잘하는 메인보컬 한명, 얼굴이 예쁘거나 몸매가 좋은 멤버 한두 명, 개성 있는 래퍼, 춤 잘 추는 멤버 이렇게 골고루 섞어놓으면 그룹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디션 현장에서는 노래 잘하는 아이들 보다는 비주얼이 나은 아이들을 위주로 정해놓고 얼굴은 좀 부족해도 노래 잘하는 아이를 집어넣어 구색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팀의 멤버가 된 것만으로도 꿈을 이뤘다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 가수들도 있다.

안 되는 노래를 연습 하고, 안 되는 춤을 연습해서 인기를 얻고 나면 그 다음엔 예능 프로에 나와 재주를 뽐내고 굴욕을 참아가며 얼굴 익히기에 최선을 다한다. 그룹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희생양이 된 듯 설움을 토해내는 가수들도 있지만 곧 검색어에 오른 자신의 기사를 보며 흐뭇해한다. 과연 수년 동안 트레이닝을 해가며 가수가 된 아이돌. 노래연습을 한 것인지, 춤 연습을 한 것인지, 예능 연습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가수가 되기 위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 다방면의 훈련이 필요한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음정도 하나 맞추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수라고 인정해 주고 박수를 보내야하는 대중은 도대체 뭐냐는 말이다.

무대 위에서는 코러스와 더빙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며 노래와 춤을 추지만 예능프로에 나와 형편없는 노래 실력을 들키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가수들을 보면 쓴 웃음이 지어진다. 오랜 트레이닝을 거쳐 가수가 되면 당장 멈추는 게 보컬레슨이다. 대신 얼굴에 보정을 하거나 미용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고 예능프로에 나와 보여줄 것을 준비하느라 밤을 샌다. 후속곡을 위해 연습을 하는 것도 안무와 스타일 뿐 노래 연습은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시간이 없다. 짧아진 활동 주기 때문에 가수들은 공백기도 없이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가수들의 모습이라면 새 앨범이 나와 활동을 하고 어느 정도 사랑을 확인하고 나면 다음 음반을 위해 휴식기 내지는 더 발전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위한 준비 기간에 들어간다. 그 기간 동안 부족했던 노래 연습과 다양한 훈련들을 하며 내공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활동에 임박했을 때 팬들은 그 설렘으로 TV앞에 앉아 박수를 보내고 발전하고 성숙한 모습에 감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그런 준비 과정에 들어간 가수들이 다시 방송국을 찾았을 땐 설자리를 잃어버린다.

선진국의 음반시장을 볼 땐 다양한 음악이 공존을 하고 그 안에서 아이돌 그룹은 하나의 장르로 구분이 될 뿐이다. 하지만 국내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십대들을 위한 학예회나 다름이 없다. 정작 그 십대들은 TV앞에 앉아 있지도 않는데 말이다. 컴퓨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십대들의 움직임에 의해서 순위가 정해지고 그 순위에 의해서 방송이 만들어진다면 아이돌 방송이 따로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렇게 아이돌 가수들의 홍수 속에서 피해를 보는 건 바로 아이돌 가수들이다. 소중한 이미지를 낭비해버린 아이돌은 곧 싫증이 날 테고 더욱 새로운 아이템과 새 얼굴들로 자리바꿈을 해야 하게 될 테니 말이다. 항상 웃음을 보이던 제작자의 눈빛이 차가워지고 서서히 보이지 않는 칼날을 휘두르며 자신을 향해 내리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처받을 아이돌의 울음소리가 벌써부터 귓가를 맴돈다. 모두가 진심으로 가수를 꿈꾸고 최고의 가수가 되기 위해 피땀 흘려가며 지금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분명 그 아이돌 중에는 솔로 가수의 꿈을 갖고 자신의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판단력이 없던 어린 시절부터 세뇌되어 온 아이돌 그룹들의 정신적인 상처는 누가 치유를 해줄 수 있을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사라져간 가수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들, 지금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모두가 나는 아닐 거라고 자만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눈물로 남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거든, 그룹이 아니면 가수로써 활동을 할 수 없는 빈껍데기가 되고 싶지 않거든, 혼자서도 가수 활동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눈 깜짝 할 사이에 그룹이 사라지만 자신도 사라질 테니까 말이다.

박준희 가수 겸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가수 박준희는...

1990년대초 '눈 감아봐도'로 데뷔, 그룹 콜라 활동. 현재 추계예술대학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 또라이들'이라는 저서를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