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케이크’ 노래처럼 아름답고 슬픈 사랑

[JTN뉴스 임귀연 객원기자] 영화 ‘쎄시봉’은 1960년대 무교동의 ‘쎄시봉’이라는 음악감상실을 배경으로 전설의 포크듀오 트윈폴리오의 탄생 비화와 더불어 그들의 친구로 그려진 가상의 인물 ‘근태’와 ‘자영’의 가슴 아픈 사랑을 담아낸 멜로드라마이다.

픽션이지만, ‘쎄시봉’은 실화를 바탕으로 영리하게 재해석한 면이 돋보인다. 포크 열풍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윤형주와 송창식, 이장희 등이 1970년대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사건, 그리고 군대문제로 트리오를 떠났지만 어쩌면 함께 유명세를 떨쳤을지 모를 제3의 멤버가 있었다는 숨은 에피소드는 이 영화의 주된 재료가 된다.

이처럼 명백한 현실과 더불어 상상으로 만든 허구가 교묘하게 뒤섞여, 실제와 같은 설득력과 드라마틱한 폭발력을 동시에 가진 영화 ‘쎄시봉’으로 재탄생 하게 됐다.

실제 4년 전 방영된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큰 열풍을 일으켰던 ‘쎄시봉’을 보면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김현석 감독은 평소에 즐겨 들었던 ‘웨딩케이크’라는 번안곡에 주목했다.

특히 경쾌한 원곡과 달리 번안곡 ‘웨딩케이크’의 가사가 왜 이리 슬프게 바뀌었는지 상상하게 됨으로써 ‘웨딩케이크’의 노랫말처럼 한 남자의 순애보이자 슬픈 사연을 담은, 마치 한 편의 주크박스 뮤지컬 같은 영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혹자는 이 영화를 ‘쎄시봉’을 이용한 감성팔이 영화라 부르기도 하고, 영화 ’건축학개론’처럼 한 여자를 향한 남자의 첫사랑을 다룬 영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한 김현석 감독에게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그 무엇이었고, 그것은 바로 첫사랑이라고만 부르려니 조금 부족한, 좀더 가슴 절절하고 진실된 사랑이었다.

정우(오근태 분), 강하늘(윤형주 분), 조복래(송창식 분), 한효주(민자영 분), 진구(이장희 분) 등 젊고 유망한 배우들의 개성적인 열연과 호흡이 돋보이는 영화의 전반부는 주옥 같은 명곡들과 함께 아름답고 찬란했던 젊은 날의 안타까운 사랑이 잘 드러난다.

그들의 이야기에 생명력을 주고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다름아닌 음악이 가진 힘이었다.

그 순수하고 젊은 시절, ‘트리오 쎄시봉’의 세 멤버 앞에 ‘민자영’이라는 아름답고 생기 있는 한 뮤즈의 출현 덕분에 ‘조개껍질 묶어', ‘담배가게아가씨’, ‘웨딩케익’ 같은 명곡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설정이 참 기발하다.

여기에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발군의 기타 연주와 노래 솜씨로 수 십 년 전, 실제 트윈폴리오를 보는 듯 ‘하얀 손수건’이나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등을 멋지게 소화해내는 극중 배우들의 하모니는 이 영화가 주는 색다른 매력포인트이다.

또한 영화 속 상황에 빗대어 볼 때,참 많은 것을 함축하고 곱씹어 보게 만드는 의미심장한 대사들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근태야 너는 나에게 무얼 해줄 수 있어?”

마냥 순진하지만은 않은, 세상을 어느 정도 아는 ‘자영’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평생 한 여자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겠다며 천진난만하게 대답하며, 그 날 밤 특별히 그녀를 위해 충무김밥을 사주었던 ‘근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라는 노래의 노랫말처럼,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을 것만 같고 평생 한 사람만을 위해 노래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만들었던 그의 순애보는 결국 안타깝게 끝이 나지만, 여기에서 영화는 더 나아간다.

“사랑도, 꿈도 잃은 채 평생 의미 없이 살아온 제 나이 또래 중년 남자의 모습을 대변할 수 있었기에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었던 배우 김윤석의 말 그대로 20년이 지나 평범한 중년 회사원이 돼버린 ‘근태’는 어딘가 모르게 한 없이 쓸쓸해 보인다.
20년 만에 LA 출장 길에서 ‘장희’를 찾은 ‘근태’의 한 마디 “난 너희들 친구 아니다” 란 말에도 왠지 모를 페이소스가 짙게 느껴진다.

20년이 지난 그 시점, LA의 공항에서 ‘근태’와 ‘자영’은 우연히 다시 만난다. 

“그 때 먹었던 충무김밥 참 맛있더라”

“지금은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건데 뭘.”

그 시절의 특별한 관계만큼 둘 다 고대했던 만남이었지만,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느껴지듯 그들의 재회는 담담하고 어색하기만 하다.

뒤늦게 ‘장희’를 매개로 밝혀진 진실 앞에서 ‘자영’은 ‘근태’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며 펑펑 눈물을 흘리고, ‘근태’는 애써 담담한 듯 보이나 그녀의 시선이 사라진 곳에서 무너지듯 주저앉아 흐느낀다.

개인적으로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멀고 먼 길을 돌아 남녀 주인공들을 그 장소, 그 시간에서 그렇게 우연처럼 마주치게 하고, 꼭 그렇게 진실을 밝혀야만 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한 장면을 위해 약간의 지루함과 부자연스러운 신파를 기꺼이 택한 감독의 우직한 선택을 어쩌면 이해하고 존중해 줄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근태’와 ‘자영’처럼 시간이 흘러도 아쉬움과 씁쓸함으로 뜨겁게 사랑했던 순간을 아프게 상기시켜주는 사랑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을 보며 문득 故 피천득이 쓴 ‘인연’의 마지막 글귀가 떠올랐다.

“그리워 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사람을 운명의 장난처럼 보고서 씁쓸해하는 것,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일 지 모르니까 말이다.

JTN 임귀연 문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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