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멀리 떠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 곳에서 좋은 풍광을 접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는 의미도 있다. 또한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여행지만의 특별한 음식을 맛 보는 것이다. 3월 초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경상남도 통영과 거제에 다녀왔다. 그 곳에서 극히 일부분의 풍광과 대표적인 음식 몇 종을 맛 보았을 뿐인데, 지금까지 여행의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필자는 통영과 거제에서 보고 느꼈던 감동을 여러분에게도 조금이나마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모니터와 키보드 앞에 앉았다.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은 것은 '통영과 거제의 맛'이다. 지금부터 남해안의 진미를 만나러 떠나 보자.



통영 중앙시장에서 맛 본 회와 매운탕

7일 통영 중앙시장의 활어시장에 갔더니 여간 북적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상인들은 중앙 통로에 자리 잡고, 다양한 해산물들을 진열해 놓고 열심히 회를 뜨고 있었다.

여기 저기서 칼로 도마를 찍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 그리고 호객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곳은 '맛'의 생산 공장이었던 모양. 이것은 우리 선조대부터 해 온 하나의 놀이였고, 춤이었고 전시였다. 이런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우리는 여기서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게 되었다.



광어와 도다리 등 여러가지 회를 시켰다. 광어와 도다리는 그 모양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데, 구별법이 있다고 한다. '좌광우도'라고 흔히 말하는데, 사람이 광어나 도다리의 꼬리 지느러미 부분을 잡아 위에 두고, 눈이 있는 머리 부분을 아래에 두고 봤을 때 눈이 왼쪽으로 쏠려 있으면 광어이고, 눈이 오른쪽으로 쏠려 있으면 도다리다.

이 방법도 어렵다면, 이빨이 있고 입이 크면 광어, 이빨이 없고 입이 작으면 도다리로 보면 된다. 사실 광어와 도다리도 알에서 부화할 때는 다른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눈이 양 쪽에 하나씩 있으나, 모래바닥에 찰싹 붙어서 서식하기 위해 성장하면서 눈이 한 쪽으로 이동을 하는 변태를 하는데, 이때 광어는 눈이 왼쪽으로 이동해서 합쳐지고, 도다리는 오른쪽으로 이동해서 합쳐진 것이다.



횟집에 들어가면 선식(先食)이 맛깔스럽게 나온다. 음식의 맛이란 미각만으로 느끼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렇게 색을 맞춰서 예쁘게 배열하면 음식의 맛도 한결 좋아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맛'도 오감 전부를 통해서 느끼는 모양이다. 눈으로 보며, 냄새를 맡고, 손이나 다른 도구를 이용해서 그 촉각을 느끼고, 씹는 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혀를 통한 미각으로 느끼니 말아다.

녹색의 상추와 하얀 무의 배경 위에서 해산물이라는 주제가 더욱 돋보였다. 싱싱한 소라와 멍게, 새우와 석화(굴 : 돌꽃이라는 말이 더 좋은 듯 하다)가 노란 고구마, 주황색 귤의 속살과 더불어 먹음직하게 보였다.



나이를 먹을 수록 해산물이 더 좋아진다. 육류를 먹으면 다음 끼니까지 속이 더부룩하고 부담이 있는 편인데, 해산물은 아주 깔끔하게 소화가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광어회. 개인적으로 제일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광어의 지느러미 살이다. 이 부분은 기름기가 있어서 고소한 편이다. 해산물의 기름기는 육류의 그것과 달라서 입에 잘 녹고, 향긋한 맛이 나 부담이 적은 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더 달라고 해도 줄 수 없는 부분이다. 어쨌든 가늘게 썰은 회를 식초 고추장이나,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 먹거나, 쌈을 싸 먹어도 참 맛있다.



회를 뜨고 남은 부산물, 즉 머리, 뼈, 꼬리, 지느러미 등으로 만드는 매운탕도 별미다. 익히지 않은 음식인 회를 먹고 이렇게 따뜻한 음식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 진다.

대체로 생선 매운탕에는 야채를 많이 넣고, 해물 매운탕에는 야채를 적게 넣는다. 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일 때에는 무, 호박, 콩나물, 쑥갓 등 시원한 맛이 우러나는 야채를 넉넉하게 넣어야 시원한 맛이 충분히 우러난다. 반면 여러가지 해물을 주재료로 끓일 때에는 해물 자체에 시원한 맛이 있으므로 야채를 적게 넣고 해물로 맛을 낸다. 낙지, 오징어, 조개 등의 해물류는 너무 오래 끓이면 살이 오그라들어 질긴 맛이 난다.



현지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멸치회

통영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멸치회다. 갓 잡은 멸치를 회로 만드는 것인데 아주 별미다. 대체로 '치'로 끝나는 물고기들과 그것들을 잡아먹는 물고기들은 성질이 급하다. 이것들은 잡히면 맹렬히 파닥거리다가 곧 죽고 만다. 바다 안에서 서로 쫓고 쫓기며 무척 빠르게 움직이는 놈들이다. 멸치, 꽁치, 고등어, 삼치, 그리고 참치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는 상태에서 이 생선들을 먹는 것은 매우 어렵다. 생선이 죽으면 사후강직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풀리는 시간이 4~5시간 이후라고 한다. 이 때가 되면 머리를 잡고 쑥 빼면 뼈와 내장까지 빠지기 때문에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고 한다.

이렇게 양념을 하는 이유는 멸치 회가 약간 비린 맛이 있어서 그런다고 하는데, 필자는 양념이 없이 먹었어도 그렇게 비린 맛은 느끼지 못했고, 맛이 있었다.



'바다의 꽃' 멍게의 달콤한 맛

멍게 양식장에서 바로 끌어올린 싱싱한 멍게도 맛 볼 수 있었다. 흔히 음식으로 우리의 식탁에서 접했던 멍게이지만, 양식장에서 보고 먹은 멍게는 정말 '바다의 꽃'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일단 크기부터 수도권에서 먹을 수 있는 멍게를 압도했다. 어린 아이의 주먹만 한 멍게를 한 점 들고, 입 안에 넣으려 하자, 코 끝으로 스며드는 멍게 특유의 향이 그윽하면서도 향긋했다. 그동안 집에서 먹었던 멍게는 약간 씁쓸한 맛이 났는데, 남해의 멍게는 오히려 '달콤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을 만큼 맛이 좋았다.



'멍게'라는 이름은 원래 사투리다. 널리 사용되어 표준어로 바뀌게 되었지만, 사실 학술적으로 정확한 명칭은 '우렁쉥이'다. 멍게 특유의 맛은 불포화 알코올인 신티올(cynthiol) 때문이며, 글리코겐의 함량(약 11.6%)이 다른 동물에 비해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 외에도 프랑스, 홍콩, 일본에서도 음식으로 먹는다고 한다.



해산물을 익혀 먹지 않는 것이 꼭 일본인의 습성이나 문화처럼 이해되고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도 예전부터 익히지 않은 음식 즉, 회(膾)를 즐겨 먹었다. '지봉유설'에 “중국인은 회를 먹지 않는다. 말린 고기라 해도 반드시 익혀 먹고 우리나라 사람이 회를 먹는 것을 보고 웃는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 많이 먹던 음식임을 알 수 있다.



정갈하고 담백한 충무김밥

도착한 다음날 아침. 통영의 대표적인 간식 겸 여행음식인 '충무김밥'을 먹게 되었다. 통영의 대표 식품처럼 소개 되어 있는 충무김밥은 이렇게 단촐하게 생겼다. 한 입에 넣을 수 있는 맨밥을 김으로 만 김밥과 무김치, 그리고 어묵과 오징어 반찬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음식이 왜 그렇게 유명세를 탄 것일까?



충무김밥은 본래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통영에서 여행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김밥 안에 시금치며 여러 양념들을 넣어두면 날씨가 더운 날에는 쉽게 상하기 때문에 이렇게 맨밥과 반찬을 따로 만들어서 공급했다고 한다.

주로 여행객들이 오가는 연락선, 여객선 터미널 주변에서 여행객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한다. 맛은 참 담백했고, 특히 손으로 집어 먹는 무김치도 참 맛있었다.



싱싱한 해산물을 넣고 끓인 해물탕

8일 학동 몽돌 해변의 일출을 찍고, 선장회식당에서 싱싱한 해물탕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식당 주인이 어선을 모는 선장이라서 그런지 모든 해산물이 참 싱싱하고 맛이 좋았다.




각종 해물과 야채와 마늘, 그리고 빨간 고춧가루. 보는 맛도 먹는 맛처럼 좋았다. 또한 맛난 살의 물고기들, 그 고소한 맛의 갈치와 각종 전과 김치. 여행. 그것은 맛과 함께 하면 기쁨이 여러 배가 된다.



봄에만 먹을 수 있는 도다리쑥국

8일 점심은 봄에만 먹을 수 있는 제철음식 '도다리쑥국'을 먹었다. 봄철에 살이 올라 제일 맛있다는 도다리와 역시 봄의 전령사 쑥과 더불어 만든 이곳의 대표적인 음식. 생선국 하면 비린내 때문에 이맛살을 찌푸리는 이가 많지만, 도다리쑥국은 살아있는 생선, 담백한 양념, 다듬는 방법 등이 어우러져 비린내 없이 바다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도다리쑥국의 조리법은 물에 소금 간을 약간 하고 무를 넣고 끓이다가 생선을 넣는데 쑥은 먹기 직전에 넣는다. 비린내를 없애는 요령은 된장으로 물이 끓을 때 약간 넣는다고 한다. 통영시내 대부분의 횟집에서 지금 먹을 수 있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만나는 것, 늘 있었던 곳을 돌아보는 것.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멋진 풍광을 보고, 또 '맛'을 느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가오는 주말에 남해에 내려가 그곳의 참맛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농림수산식품부 디지털홍보대사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