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비빔 대표이사 김영원 씨. ⓒJTN NEWS [사진=유승관 기자]

힙합ㆍ비보이와 한(韓) 스타일 결합한 새로운 공연문화 선도
오는 2월18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비빔' 공연

[JTN뉴스 현화영 기자]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무대를 주름잡는 한국 비보이들이 대한민국 문화계와 언론 등의 주목을 받으며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떠올랐었다.

하지만 이슈가 잦아들고 거품이 걷힌 탓일까. 비보이 댄스(비보잉, 브레이크 댄스)에 대한 관심도는 최근 들어 부쩍 줄어든 게 사실이다. 처음 비보잉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관객들은 팝핀, 프리즈, 덤블링 등 현란한 기술에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최근 몇년 사이 비보이 인구는 10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대중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이제는 일반 공연장에서도 비보이들의 활약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고 그만큼 대중화됐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지만, '비보이가 사랑한 발레리나'와 같은 히트 공연들을 대체할 비보이 공연 문화상품들이 속속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비빔 김영원 대표는 지난 2000년대 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11년간 비보이 공연의 문화상품화를 위해 노력해온 주인공이다. 한파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1월15일 비보이들이 모여 공연 포스터 촬영에 한창인, 서울 논현동의 한 사진 스튜디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비빔'이란 독특한 브랜드명 때문인지 종종 요식업체 사장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는 김 대표는 알고보니 VJ 출신이었다. 1999년 케이블 음악방송 Mnet 공채 VJ로 발탁된 그는 '생방송 가요발전소' '힙합 더 바이브' 등 각종 음악 관련 프로그램에서 진행실력을 인정받은 베테랑 방송인이다.

그런 그가 왜 비보이 공연기획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김 대표는 힙합문화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과 동경심에서였다고 말한다.

"1999년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힙합이 '대세'였던 시기였죠. 그때 Mnet에서 '힙합 더 바이브'란 프로그램을 만들고 저에게 진행을 맡겼어요. 그런데 저나 스태프들이나 힙합에 대해 아는 게 있어야죠.(웃음) 사진 공부 때문에 미국 유학을 다녀왔는데, 저라도 힙합에 대해 공부하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힙합에 관련된 외국자료들을 하나, 둘 섭렵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힙합을 록이나 발라드와 같은 음악의 하위장르라고 여겼지만, 공부를 하면서 DJ, 그래피티, 비보이, MC(랩), 비트박스 등 다양한 것들을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사조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김 대표는 음악에서 시작한 호기심이 비보이 댄스로 이어지게 되고 새로운 공연문화로서 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전한다.

"비보이를 가지고 무엇을 해볼까 하다 2003년 당시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이재국 씨를 만났어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중 이 작가가 마샬 아트 퍼포먼스인 '점프(Jump)'를 보러 가자고 하더군요. 정말 재미있게 공연을 보고 나온 뒤 '아, 이거구나'하면서 머리 속에서만 맴돌던 막연한 아이디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죠. 그때만해도 비보잉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영역으로 여겨졌어요."

이후 김 대표는 VJ, 연기자 등 방송활동과 함께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공연기획과 제작일을 병행했다. 그리고 이재국 작가와 함께 비보이를 소재로 한 첫번째 넌버벌 퍼포먼스 '프리즈(Freeze)'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2005년 8월부터 9월까지 서울 마포구 홍대 부근 롤링홀에서 공연된 '프리즈'는 드라마 제작사인 JS픽쳐스가 제작에 참여해 무대에 올려졌다.

발레리나가 비보이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비보이 댄스와 발레, 그리고 다양한 춤 장르를 섞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예상 외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배우 이근희와 서태지와 아이들 이주노 등이 연출자로 참여했으며, 팝핀현준과 김소라 등 새로운 스타를 배출하기도 했다.

작품은 성공적이었지만 여러 제작 여건상 김 대표는 이재국 작가와 함께 '프리즈'에서 손을 떼게 된다. 결국 '프리즈'는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라는 작품으로 버전업돼 그해 삼성경제연구소가 뽑은 10대 히트상품으로 뽑힐 정도로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지만, 분쟁의 씨앗이 남아 있던 탓에 저작권과 관련된 각종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날밤 새워가며 스토리를 만들고 작품을 구상한 것은 정작 '우리들'인데 작품이 떴다고 너도 나도 소유권을 주장하는 모습에 사실 좀 웃음이 났죠.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안주할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야 했거든요."

김 대표는 당시를 자신의 '전성기'라고 규정지으며 2007년 '발랄HIGH'라는 작품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비보이의 문화상품화를 결심한 이후 그의 가장 큰 지향점은 바로 '세대와 계층을 초월한 공연을 만들자'는 것. 한 비보이대회 사회를 보러간 자리에서 비보이들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며 흥겨워하는 50대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본 그는 대중적인 비보잉 퍼포먼스를 꼭 만들어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명랑힙합극'이라는 독특한 장르명에서도 알수 있듯이 '발랄HIGH'는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 힙합공연이지만, 비보잉이나 비트박스 외에도 우리나라 전통문화인 사물놀이, 오고무, 해금(악기) 등을 접목시킨 종합 문화공연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기획에서부터 연출, 각본까지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했지만 그의 월급은 정작 150만원에 불과했다고. '발랄HIGH'라는 브랜드를 육성하고 보다 나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제작비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발랄HIGH'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대형 텐트를 이용한 전용극장까지 설치해 화제가 됐었다.

"태양의 서커스와 같은 종합 공연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태양의 서커스는 '퀴담' '드랄리온' '알레그리아' 등 다양한 시리즈와 레퍼토리가 존재하잖아요. 비보이 공연도 하나의 브랜드 아래 다양한 주제로 시리즈화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러나 '발랄HIGH'는 관객들의 입소문과 호응에도 불구하고 일찍 막을 내리게 된다. 제작사 대표가 사기를 당해 재정상 위기에 처하게 된 것. 대표와 스태프들은 물론이고 출연자들의 급여마저 3개월이상 체불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극단 대표는 아니었지만 작품에 대한 모든 것들을 총괄해야 했던 김 대표의 입장에서는 무척 난처하고 어려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발랄HIGH'를 끝낸 김 대표는 잠시 휴식기를 갖게 된다. 하지만 비보잉과 전통문화를 결합하려는 시도와 아이디어는 계속 되고 있었다. '발랄HIGH' 당시 한 전통공연 기획사 대표를 알게 된 김 대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광대에서 비보이까지'라는 연구공모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비보잉 그룹들이 해외에 나가 우승하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자 문화부에서도 '신(新) 한류문화'라고 추켜세우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쉬는 틈을 타 제출자료들을 준비해서 냈더니 이름이 알려진 대형 공연기획사 등 쟁쟁한 팀들을 물리치고 저희가 선정됐어요. 이때부터 약 7개월간 국악과 춤 등 우리 전통문화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들을 만들기 시작했죠.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세대와 계층을 초월한 종합 문화공연'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생각은 우리의 것, 즉 '한(韓) 스타일'을 만나면서 차츰 완성돼가고 있었다.

G20 개최 등 대한민국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 대해 설명해줄 가장 한국적인 문화 종합브랜드가 부재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 대표는 '비빔(Bevim)'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비빔(beVIM)'은 '하다'란 의미의 'be'와 '활기'를 뜻하는 'VIM'의 합성어로, '활기차게 하라'라는 의미와 함께 비보이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태양의 서커스와 같은 하나의 문화 브랜드로 성장해 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비빔을 만들 당시 한 불교계 인사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가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데 해결 못할 일이, 안 될 일이 뭐가 있겠느냐. 그때 가슴이 찌릿해지는 전율을 느꼈어요. '그래 해 보자! 다시 시작해보자' 결심하게 됐죠."

그 첫번째 프로젝트로 김영원 대표는 오는 2월18일 막을 올리는 '비빔' 공연을 준비중에 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龍)에서 오는 3월19일까지 펼쳐지게 될 이번 공연은 비보이, 사물놀이(모듬북), 판소리, 해금, 한국무용, DJ/MC 등 동서양의 문화가 한 곳에서 어우러지는 잔치 마당을 지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기존 비보이 공연들이 10명 남짓 출연진으로 꾸려지는 것을 지켜봐온 그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비보이들은 5~10분 공연을 하고 나면 기본적으로 15분은 쉬어 줘야 해요. 동작 하나, 기술 하나하나가 정말 힘들거든요. 그런데 10명이서 하나의 공연을 꾸려간다는 것은 누가봐도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죠. 관객들이 만족도와 퀄리티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2배, 3배의 인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비빔' 공연 출연진만 모두 40여명에 이른다고. 이 뿐만이 아니다. 친구에게 빌린 5천만원으로 회사를 설립했다는 김 대표는 3D 멥핑 기술을 도입하고 국내 최고의 CF감독인 임재경 씨를 수퍼바이저로 기용하는 등 비주얼적인 요소에 많은 부분을 투자했다.

다행히 서울시나 한국관광공사, 유명 한복브랜드 등 정부나 업체의 협찬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매일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김 대표의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이 얘기 꼭 기사에 넣어주세요. 오늘 제가 용산 부근 모 업체의 강 대표님이란 분을 만났는데요. 제가 11년 동안 문화 협찬을 받으러 다니면서 가장 행복했던 마케팅 제안이란 생각이 들었다고요.(웃음) 공연을 앞두고 느낌이 아주 좋아요."

나이 마흔을 넘겼지만 김 대표는 아직 결혼보다는 일에 목말라 있는 듯 보였다. 하나의 공연이 무대의 올려지기까지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모든 과정들을 이제는 즐기게 됐다고 말하는 그다.

"'포기하는 사람은 결코 이길 수 없고 이기는 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갈 수도 있었겠지만 아직 내가 가야할 길이 멀다고 생각하니 병행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이번 공연을 통해 '위너(winner)'가 되고 싶단 생각도 없어요. 비보이와 한스타일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판을 벌여서 '그래,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죠. 글이나 문서가 아닌 실제 공연으로요."

힙합문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11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오는 동안 비보이들은 이제 그의 가족과도 같은 존재가 돼 버렸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나이 서른을 넘긴 뒤에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토양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소망 또한 간절하다.

"얼마 전 이재국 작가가 그러더군요. '우리, 비보이의 종결자가 됩시다'라고요. 이제 저의 삶과 비보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어요. 비보이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예술을 할 수 있도록 '돈'을 벌어다 주고 싶어요. 세계가 힙합을 문화에서 이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주목하는 것처럼 저도 '비빔'을 가장 한국적인 콘텐츠들을 집약시켜놓은 문화 시리즈 상품으로 내놓고 싶어요. 이번 '비빔' 공연의 첫 주제는 '서울'이지만 앞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나 종교 등 다양한 주제들을 무대에 올려 볼 생각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웃음)"

현화영 blackmania83@hanmail.net / young@jtn.co.kr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jtn.co.kr

<ⓒ 1+α 문화미디어 JTN NEWS(www.jtn.co.kr) 무단전재&배포 금지>